앞으로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피인수 기업의 일반 주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한 가격에 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된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구조조정을 지연시킨다는 우려와 IMF의 요구로 폐지된 뒤 25년여 만에 부활하게 됐다.
정부는 오늘(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M&A 등 주식양수도 방식의 경영권 변경 시 일반투자자 보호 방안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기존 최대주주가 아닌 다른 투자자가 상장기업 주식을 25% 이상 매입할 경우 의무적으로 공개매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인수합병은 주식양수도 방식이 전체의 84.3%로 다른 M&A 방식에 비해 피인수회사 주주에 대한 권리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영상으로 준비한 세미나 개회사에서 "기업의 경영권 변경과정에서 피인수 기업의 일반주주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원하는 경우, 일반주주가 보유한 지분을 인수기업에 매각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방안은 일반주주도 지배주주와 마찬가지로 해당 기업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할 수 있도록 ‘주주평등’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 적용요건은 주식의 25% 이상 인수한 최대주주 변경이 발생한 경우 나머지 주주를 상대로 공개매수 의무를 부과하도록 했다. 또한 공개매수가격은 유럽과 일본 등 글로벌 제도 기준과 주주평등 원칙 등을 감안 지배주주가 적용한 경영권 프리미엄 포함 가격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다만 일반 주주 보유지분을 전량 매수할 경우 과도한 인수대금으로 인수합병 위축 등을 우려한 업계 의견을 반영해 경영권 변경지분을 포함 `총 50%+1주` 이상 매수 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이 50%를 초과할 경우 비율대로 나누고, 미달하는 경우에 공개매수 청약물량만 매수하는 것으로 정했다.
현재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과 유럽연합은 일정규모 이상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잔여 주주 전체에 대한 공개매수 의무를 부과해왔고, 일본은 1/3 초과 취득 또는 2/3 초과 취득 등으로 기준을 완화해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한 지역이 소수 주에 그치고, 이사회의 충실 의무와 민사소송 제도 등을 통해 일반주주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김광일 금융위 공정시장과장은 주제발표에서 "미국식 방안을 국내에 단기간 도입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하고, 현시점에서 도입 가능한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와 학계 등이 참여한 토론에서는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국제적인 정합성을 갖추는 기반이 되고, 무자본 M&A나 약탈적 M&A를 예방해 자본시장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창환 얼라이언스파트너스 대표는 "이번 방안이 자본시장 선진화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획기적 발걸음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으로 M&A가 위축된다는 것은 기우"라며 "M&A는 단순히 사야하는 물량이 늘거나 금액이 커진다해서 위축되지 않아을 것이고,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면 주가가 정상화되고 자금 조달이 쉬워지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토론 참석자들은 이번 피인수기업 지분 50%+1 이상을 매수하는 기준으로 인해 일부 편법이 등장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공통적인 지적을 내놨다.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은 20% 미만의 지분을 갖고도 시장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편법들을 쓰게 되면 제도를 빠져나갈 수 있다"면서 "지분 25% 미만인 주주가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제도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제도가 조기에 안착할 수 있도록 상장사가 금융감독원에 공개매수신고서를 제출한 뒤 그 결과를 보고받는 등 사후 관리·감독을 강화할 예정이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의무공개매수 의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경영권 취득 과정의 의결권 제한이나 주식 처분 명령을 내리고, 허위 공고인 경우 배상 책임 등 법적 조치를 강제할 방침이다.
김 부위원장은 "기업의 경영권 변경 과정에서 일반투자자의 권익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는 한편, 지배주주와의 불투명한 거래를 통해 기업의 경영권을 탈취하는 ‘약탈적 M&A’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발표 내용을 금융위원회 업무계획에 반영하고, 내년 중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 이후 1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둬 상장기업과 투자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날 세미나에서 공개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포함해 지난 5월 자본시장 국정과제로 제시한 과제의 실현 방안 발표를 마무리했다.
일부 상장기업이 알짜 회사를 물적분할하는 등 일반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지난 9월 물적분할시 주주보호 방안을 마련했고,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불공정거래 대응 강화, 상장폐지 절차 개선 등을 차례로 발표했다.
김 부위원장은 "정부가 발표한 정책중 입법이 필요한 과제들은 내년중 신속하게 제도화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