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기 암 환자는 면역력 저하로 각종 감염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 항생제 처방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임종을 앞둔(임종기) 암 환자에게 항생제 사용이 도움된다는 뚜렷한 근거는 없다.
국내 의료진은 80% 이상의 임종기 암 환자가 항생제를 투여받고 있으며, 완화의료 상담을 통해 투여를 54% 가량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완화의료 상담은 중증 질환을 가진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투병하는 과정에서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게 돕는 서비스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다학제 팀에 의해 이뤄진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교수·김정한 이대서울병원 교수 연구팀은 상당수의 임종기 암 환자(진행기를 거쳤던)가 항생제를 투여받는 점에 착안, 완화의료 상담이 임종 3일 이내 항생제 사용을 줄일 수 있는지 살폈다.
대상자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중 사망한 암 환자 1,143명이었다. 연구팀은 사전에 완화의료 상담을 받은 468명(40.9%)과 받지 않은 675명(59.1%)으로 나눴으며, 두 집단의 특성을 비슷한 수준으로 보정(성향점수 가중분석)했다.
분석 결과, 1,143명 사망 암 환자 중 임종 3일 이내 항생제를 투여받은 비율은 약 82.2%(940명)였다.
완화의료 상담군에서 임종 3일 이내 항생제 투여 비율은 73.5%로, 비상담군 88.3%에 비해 유의하게 낮았다. 뿐만 아니라 임종 당일까지 항생제를 투여한 비율도 상담군에서 50.4%, 비상담군에서 67.4%로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항생제 종류별 분석 결과에서 그람 음성균에 대한 광범위 항생제인 ‘카바페넴’ 사용은 완화의료 상담군 22.4%, 비상담군 42.4% 였다. 그람 양성균에 대한 광범위 항생제 ‘글리코펩타이드’ 사용은 완화의료 상담군 11.1%, 비상담군 23.3%으로 절반 가량 줄었다.
나이·성별·발열 여부·배양검사 결과 등 다른 요인을 감안해 분석했을 때에도 비상담군에 비해 완화의료 상담군에서 임종 3일 이내 항생제 투여 확률이 54% 더 낮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완화의료 상담이 임종 시기의 암 환자에서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근거다. 완화의료 상담이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 시행을 감소시킨다는 연구는 있으나, 임종기 항생제 사용 감소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 최초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유신혜 교수는 “진행기 암 환자에서 항생제 사용은 의학적 적응증만 가지고 결정할 수 없고, 환자 가족의 치료 목표·가치· 선호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료진과 함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항생제의 불필요한 사용을 줄이는 데 완화의료 상담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정한 교수는 “임종기 환자에게 항생제 투여 시 환자를 괴롭게 하는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항생제 투여만으로 감염증 혹은 감염과 유사한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의 의료 행위와 마찬가지로 항생제 사용이 환자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를 잘 고려해 투여를 결정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항균제 분야 국제 학술지 ‘항균화학요법 저널(Journal of Antimicrobial Chemotherapy)’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