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 시장에 한파가 불어닥쳤다. 지난 쏘카의 IPO 흥행 실패에 이어, 더블유씨피 또한 최근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공모가를 하향 조정했다.
더블유씨피는 공모가를 6만원으로 확정하고 20일부터 이틀간 일반 청약에 나선다고 19일 밝혔다. 더블유씨피의 희망공모가액 하단이 8만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25%나 낮춘 것이다.
상장을 주관하고 있는 KB증권과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이번 수요예측에는 국내외 총 759개 기관이 참여해 33.2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상장주관사 관계자는 "침체된 IPO 시장 상황과 과배정에 대한 우려로 인해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이 실수요량으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 수량 1억 7,972만 7,893주, 참여 금액은 12조원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공모가가 6만 원으로 내려앉으면서 최대 3조 4,01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 더블유씨피의 몸값도 2조 218억 원 규모로 대폭 낮아졌다.
더블유씨피는 2차전지 분리막 제조업체로 오랜만에 나타난 `대어급 IPO`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성일하이텍, 새빗켐 등 2차전지 관련주들의 IPO 흥행으로 더블유씨피의 흥행 기대감도 커진 상태였다.
하지만 분리막 시장 1위 업체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주가가 크게 하락한 점이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장중 7만 6,100원까지 밀리며 52주 신저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이에 최원근 더블유씨피 대표는 "참패는 아니다"라며 "상장 이후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KB스타리츠 역시 지난 15~16일 진행한 일반청약에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대표 주관사인 KB증권에 따르면 KB스타리츠의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은 26.19대 1, 일반청약 경쟁률은 2.06대 1에 그쳤다.
KB스타리츠는 KB금융그룹이 선보인 첫 공모 상장 리츠다. 배당수익률 연 7.76% 등을 내세웠지만 최근 리츠 투자심리가 악화된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 인상기에 리츠의 금융비용이 상승하면 배당수익률이나 투자 안정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다른 최대어인 케이뱅크와 컬리도 흥행을 장담하기 힘들게 됐다. 케이뱅크는 20일, 컬리는 지난달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
두 기업 모두 상장에는 무리가 없으나 다만 계속된 대어급 기업들의 IPO 흥행 실패로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에 케이뱅크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증권신고서 제출 시기를 탄력적으로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증권업계는 지금과 같은 IPO 시장 위축의 가장 큰 이유로 매크로적인 이슈를 꼽았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와 물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잡히기 전까지는 IPO 시장도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며 "미국 물가 지표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 등을 확인하면서 가시적인 미래 그림을 그리려면 연말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전망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올 들어 금리 인상으로 시장 자금은 말랐고 비상장 기업, 성장기업의 밸류에이션에 대한 눈높이는 높아졌고 벤처캐피탈(VC), 사모투자(PE)도 보수적인 견해로 바뀌었다"면서 "자금 경색, 주가 폭락, 수요예측 제도 변경 등의 요인이 시장 하강의 속도를 더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더해 개인투자자들이 새내기 종목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결국 종목들의 주가 하락으로 이어진 것도 IPO 시장이 얼어붙은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초부터 이달 20일까지 우리 증시에 상장한 종목(스팩·리츠 제외)은 모두 44개다. 이 가운데 공모가 대비 하락률을 기록하고 있는 종목은 26곳으로 전체의 59.1%에 달한다.
특히 모아데이타(-90.7%), 위니아에이드(-52.8%), 레이저쎌(-47.8%), 쏘카(-33.8%) 등은 공모가와 비교해 30% 이상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