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중구에서 경찰로부터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스토킹에 시달리다 살해된 데 이어 이번에는 가해자가 신변보호 대상자의 가족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두 달이 다 돼가지만, 스토킹 범죄 등이 보복성을 띤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지 못하는 일이 지속해서 발생하면서 관련 법 제도의 보완과 치안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20대 남성 이모(26)씨가 연인관계였던 A(21)씨 집에 찾아갔고, A씨가 없자 A씨의 어머니와 남동생을 흉기로 찔렀다. 어머니는 병원 이송 중 숨졌고 남동생도 중태다.
앞서 A씨는 지난 6일 이씨를 성폭행 혐의로 다른 지역 경찰서에 신고, 신변보호 대상에 등록됐으며 이씨에 대한 수사 나흘 차에 참극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됐듯 신변보호 조처가 피해 당사자에게만 적용돼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등은 여전히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찰의 신변보호 지침에는 보복 우려 등이 있는 경우 당사자나 가족, 친족, 주변인 등도 관리 대상이 되게 돼 있지만 예산과 인력, 스마트워치 기기 한정 등 이유로 대상자 관리도 벅찬 현실이다.
이 때문에 4개월 전 제주에서는 사실혼 관계였던 여성에게 앙심을 품고 여성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일도 있었다. 해당 여성 역시 피의자 남성을 경찰에 가정폭력으로 신고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해 이 남성이 폭행 혐의로 입건되고 여성의 주거지 100m 이내 접근 금지 등 긴급 임시조치도 적용된 상태였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다.
스토킹 범죄는 `반복성`이 핵심이고, 횟수가 누적될수록 공격성과 보복성이 강화해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신변보호 대상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가해자 입장에서 스토킹 대상, 1차 타깃에 접근할 수 없게 되면 통상적으로 그 사람의 부모나 자녀, 형제자매를 공격하는 게 수순처럼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스토킹이나 성범죄의 경우 당사자도 위험하지만, 주변 가족이나 지인도 보복 등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변보호 대상자와 가해자 간의 세밀한 관계, 위해 가능성 등을 속속들이 파악할 만큼 치안 역량이 갖춰지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만 해도 2만 건에 가까운 신변보호 조치가 이뤄졌으며 매년 보호 요청이 증가하는 추세다. 담당 경찰서 1곳당 80명의 신변보호 대상자를 관리해야 하는 셈인데, 전담 경찰관은 경찰서별로 1명뿐이어서 제대로 대응이 어려운 실정이다.
최종술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변보호 대상자 한 명이 신고할 때마다 여러 경찰관이 출동해 확인하고 사안을 파악하다 보니 전문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날 이씨 사례에서는 스토킹처벌법의 맹점도 발견된다. 피해가 예측되지만 실질적 피해가 없는 경우에는 경찰이 해당 법으로 가해자를 유치장에 입감하는 등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로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지속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다 보니 경찰도 뾰족한 개선 방안이 없어 고민에 빠진 분위기다.
오 교수는 "올해가 스토킹처벌법 시행 원년인데 어찌 보면 피해 사례가 더 눈에 띄니 경찰도 난감한 것 같다"며 "현장 대응을 위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되면서 상당히 침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전했다.
경찰은 최근 현장 대응력 강화 태스크포스(TF) 논의 과정에서 신변보호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내부에서는 신변보호가 24시간 개인 경호를 의미하지는 않는 만큼 용어 등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찰은 신변보호의 법적 근거와 한계, 보호 대상자의 범위와 제도 운용의 내실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