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뛰던 집값이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와 금리 급등으로 진정되고 있다고 하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기는 부자들에게 오히려 손쉬운 자산 증식의 기회가 됐다.
청년층의 취업난이 지속하는 가운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일자리 격차도 더 벌어졌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새로운 게 아니지만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뛴 상황에서 다주택자가 급증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착실하게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게 후회됩니다."
서울에 사는 40대 초반 직장인 A씨는 "지금 있는 집의 전세금 시세가 2년 사이에 2억원이나 뛰었다"며 "이번에는 계약갱신권을 행사해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2년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0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주택을 두 채 이상 가진 사람은 지난해 232만명으로 전년보다 3만6천명 증가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정부의 부동산 세제와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에도 풍부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한 부동산 열풍이 작용했다.
반면 무주택 가구는 3.5% 늘어난 919만7천가구로, 2015년 가구 단위 조사 이후 900만 가구를 처음 넘었다. 집값 급등과 대출 규제 강화로 중·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집값 상위 10%와 하위 10%의 주택 자산가액(공시가격 기준) 격차는 2019년 40.85배에서 지난해 46.75배로 커졌다. 상위 10%의 주택 자산가액은 평균 13억900만원으로 1년 사이에 2억600만원이 뛴 반면 하위 10%의 주택 자산가격은 2천800만원으로 100만원 오르는 데 그친 데 따른 것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1 한국 부자 보고서`를 보면 작년 말 기준 부자(금융자산 10억원 이상)는 39만3천명으로 전년보다 10.9%(3만9천명) 증가했다. 이들 가운데 70.4%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올해 한국 부자의 총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59.0%를 차지해 금융자산(36.3%)보다 많았다. 부동산자산 비중은 2017년 52.2%에서 2018년 53.3%, 2019년 53.7%, 2020년 56.6%로 매년 커졌다. 부동산 가격 상승 영향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국의 아파트 증여 건수는 6만3천54건에 달할 정도로 증여 바람도 불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수도권 주택 공급 부족과 수요 쏠림,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산가치 상승을 노린 투자 열풍,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패 등이 맞물려 부동산 자산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고 원장은 "자산가들은 정부 규제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으며 주택을 더 구매하거나 증여를 통해 기존 보유 주택을 분산시킨다"면서 "양극화 완화를 위해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 임대아파트 확대, 청년층 주거비 지원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자리의 지역별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 특히 일자리를 찾으려는 청년층의 수도권 유입이 이어지면서 지방 소멸 위험마저 커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이달 15일 내놓은 이슈 브리프(지역 일자리 양극화의 원인과 대응 방향)에 따르면 수도권에 일자리가 집중되는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1990년 수도권 취업자 수는 776만명으로 비수도권(1천32만명)보다 256만명 적었지만 2014년부터 역전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수도권 취업자 수는 1천352만명으로 30년 사이에 74.2% 급증한 반면 비수도권은 1천338만명으로 29.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월평균 명목임금 격차는 2015년 8.5%까지 좁혀졌다가 지난해 10.6%(수도권 295만원, 비수도권 266만원)로 벌어졌다.
최근 수도권 인구 유입은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와 높은 소득을 기대하는 2030세대가 주를 이루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20~30대의 수도권 순유입은 9만3천명으로 2015년(2만3천명)의 4배에 달했다.
정부가 지난달 시·군·구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처음 지정·고시하고 이들 지역의 일자리 창출, 청년 인구 유입 등을 위해 10년간 매년 1조원씩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는 이런 상황이 반영됐다.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경기와 인천의 2곳씩을 빼고는 모두 비수도권 지역이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은 2019년 5월 93개(40.8%)에서 2020년 5월 105개(46.1%), 올해 5월 106개(46.5%)로 증가했다.
한 지역의 20~39세 여성인구 수를 해당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로 나눈 값인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이면 인구감소로 인한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일자리위원회는 "수도권의 탈제조업화, 고학력·고숙련 노동의 수도권 집중 등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일자리 격차 심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방 소멸 위험을 불러오는 비수도권 인구 감소의 핵심 요인은 청년층이 선호할 수 있는 지역 일자리 부족과 청년 인구의 유출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함께 몰아치는 고용 한파에 청년층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한국경제연구원이 산출한 올해 상반기 연령별 체감경제고통지수 가운데 청년층이 27.2로 60대(18.8), 50대(14.0), 30대(13.6), 40대(11.5)보다 월등히 높은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