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바이올린 거장으로 불리는 핀커스 주커만(72)이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계 음악인을 향한 망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13일 온라인 음악전문지 `바이올리니스트닷컴` 등 따르면, 주커만은 지난달 25일 뉴욕 줄리아드 음악학교 주최로 열린 온라인 마스터클래스 도중 한국과 일본을 공개 비하했다.
"좀 더 노래하듯이 연주해보라"는 자신의 주문에도 아시아계 자매 학생의 연주가 성에 차지 않자 그는 "한국인들이 노래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래하지 않는다`는 언급은 예술성과 음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자매에게 주커만은 "그러면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고, 일본계 혼혈이라는 답변에 "일본인도 노래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쏘아붙였다.
주커만은 행사 말미에도 "한국인들은 노래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의 DNA에 없다(In Korea they don`t sing. It`s not in their DNA)"라고 언급해 실시간 영상을 지켜보던 청중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주커만은 이같은 발언 앞에 "한국인들은 마치 연주에 간장을 약간 쓰는 듯 하다 (they use a little "soy sauce" in their playing)"고도 밝혀 분노를 샀다.
모든 수업 녹화본을 홈페이지에 올리려던 줄리아드 측은 `한국인 발언`을 의식한 듯 주커만을 뺀 나머지 강연만 게시했다.
이스라엘 태생인 주커만은 1967년 당시 세계 최고 권위의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정경화와 공동 우승한 바이올린 거장이다. 현재 뉴욕 맨해튼음대(MSM) 소속이지만, 당시 외부 강사 자격으로 줄리아드 강연을 진행했다.
한국에서만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모두 7차례 공연을 할 정도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비판이 일자 주커만은 "문화적으로 둔감한 언급이었다.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싶다"라고 성명을 냈고, 소속 학교 MSM 동료들에게도 "잘못된 말을 했고 많은 사람에 상처를 입혔다"는 이메일을 돌렸으나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나온 주커만의 망언에 아시아계 음악인들은 페이스북 그룹을 개설하고 차별 경험을 공유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보이콧 주커만`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차별 발언을 공론화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확산 중인 한 영상에서 주커만은 "중국인 여러분은 결코 메트로놈(음악 박자를 측정하거나 템포를 나타내는 기구)을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 빠르고 시끄럽게 (연주)할 뿐"이라며 "여러분은 빠르고 시끄러우면 최고인 줄 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한중일 출신 연주자를 인종적 고정관념의 틀에 가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아시아계 음악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소속 학교의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제임스 갠드리 MSM 학장은 "주커만은 부적절하고 모욕적인 언급을 했다. 이는 잘못된 발언"이라면서도 주커만이 반성한다는 이유로 "그가 앞으로는 더 잘할 것"이라며 신뢰를 보냈다.
그러나 갠드리 학장의 대응은 지난해 MSM이 이보다 덜 명백한 인종주의 논란에 휩싸인 도나 본 오페라 예술감독이 물러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본 감독은 지난해 온라인 질의응답 중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적 묘사를 담은 프란츠 레하르의 `미소의 나라`를 상연하는 이유에 관한 질문을 받자 "연결을 끊으라"며 답변을 회피했다가 해임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 휘말렸다.
(사진=바이올니스트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