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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잊은 대통령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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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마치고 기자들과 질의 응답을 하며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2021.5.10
지난해까지는 `원상회복`이라는 단어로 집값을 잡겠다는 기개라도 보여줬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없었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누구나 아는 엄청난 유동성과 세대수 증가 문제를 `천재지변`처럼 말하더니, 그저 송구하다는 말뿐이었다. 이것이 과연 `사과`였나?

최근 경실련이 서울 아파트 11만5천 세대를 조사했더니, 4년 간 무려 93%가 올랐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대통령이 원상회복을 외친 지난해 1월 이후에도 27%가 더 올랐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집값 잡겠다는 말이 싹 사라졌다. 이제 대통령도 여당도 국토부도 집값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저 다음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도 입주를 장담할 수 없는 `공급`이란 신기루 같은 단어만 외치고 있다.

마음 다잡고 시작한 `공급`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사전청약`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판타지`로 정책의 실패를 덮을 수는 없다. 게다가 서울 주변을 싹 다 파헤치겠다는 3기 신도시가 약속대로 공급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벌써부터 여기저기 잡음이 들린다.

억울할 수도 있다. 엄청난 유동성이 만든 자산 가격 버블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동산 정책 프레임 때문에 정부가 잘한 것도 다 묻힌다는 불평도 이해가 간다. 또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언론의 평가가 야박한 것도 사실이다. 왜 이 지경인가?

25번의 대책이 나오는 동안 우리 모두는 투기꾼으로 내몰렸다. 집 한 채 더 사서 노후를 준비하던 부모님도, 허름한 전셋집 살면서 재건축 딱지 하나만 바라보는 형·누나도, 더 늦기 전에 새 아파트 살아보려 기회만 보는 고모·이모도, 역세권 아파트를 향해 2년마다 이사를 하는 우리도 `투기꾼`으로 불렸다.

국민들을 몰아세우고는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없이 그나마 잘한 것들을 알아주길 바랐다. 부동산에서 시작된 불신은 문재인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를 깨버렸다. 부동산 정책의 상징이었던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뒤로는 `영끌`해서 집을 사더니 이제 수사까지 받을 처지가 됐다. 이러니 무엇을 믿겠는가.

좋은 경제학자들에게 듣고 훌륭한 장관을 쓰지 않은 건 온전히 대통령의 책임이다. 공무원들 질책할 필요도 없다. 제대로 된 철학이 없었으니 닥치는 대로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잡을 시간은 충분했다. 엄청난 유동성의 힘을 막기는 버거웠겠지만, 누더기 대책으로 시장의 메커니즘을 망가트리지는 않을 수 있었다.

무려 25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동안, 3기 신도시 중 하나를 공공임대 아파트로 덮어버리겠다는 결기라도 보여주지 못했다면, 이제 와서 국정철학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비싼 집 가진 사람이 세금 더 내는 건 그래도 명분이라도 있으니, 부동산 세제를 비판하는 건 `억까`일수도 있겠다. 백번 양보해 이 부분은 사과하지 않으셔도 좋다.

건방지다 노여워하지 마시라. 올라간 집값은 둘째 치고, 덕지덕지 만든 부동산 관련 법과 제도는 앞으로 우리 국민들의 삶을 불행하고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25차례 덧칠을 한 졸작이라도 그것이 나라의 법과 제도라면, 그것을 바로 잡는 데도 적지 않은 세월이 걸린다. 대통령은 떠나도 우리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일이다.

슬그머니 태세 전환하지 마시고 먼저 조목조목 잘못을 따져 국민들에게 사과하시기 바란다. 억울한 것도 안다. 사과한다고 집값이 떨어질 것도 아닌데 지금 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도 그렇게라도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간 국민들 한풀이는 해주셔야 하지 않겠나. 그게 대통령 되시기 전에 말씀하시던 지도자의 자세 아니었나.

그래야 넓은 땅에 멋지게 지은 새 집에서 노후를 보내실 때, 인사드리러 찾아온 국민들 볼 낯이 있지 않겠는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집값에 고통스러운 국민에 대한 예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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