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당적으로 발의된 `반독점법`
6월11일. 우리 시간으로는 지난주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이어지던 시각이라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미국 하원에서는 향후 미국 경제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됐다.
민주당과 공화당 구분없이 초당적으로 발의된 법안은 이른바 `반독점법` 개정안이다. 5개 법안이 패키지로 묶였고, 법안의 대상은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4개 기업을 콕 집었다.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
F.A.A.N.G에서 넷플릭스만 빠졌다.
법안의 핵심은 간단하다. 이 4개 회사를 물리적으로 2개로 쪼개든지, 상품과 서비스를 별도로 분리하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이들 빅테크의 기업가치(주가)와 산업지형을 모두 바꿀 수 있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녔다.
지난 선거 결과 블루웨이브가 나타났지만 공화당의 도움 없이는 법안 통과가 불투명하다. 개정안의 일부 수정이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개정안이 기업들에게 너무나 불리하다며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독점행태가 지나치다는 여론이 높은 만큼 양당의 밀당이 진행될 공산이 높다.
■ 23일 하원을 주목하라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현지시간 23일(수) 발의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지 여부를 놓고 표결에 들어간다. 공화당에서 최소 10명이 찬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본 회의 상정은 무난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상원 통과를 위해 이 과정에서 일부 법안이 개정될 것이라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시간으로 내일 아침이면 빅테크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지 미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법제화와 미국 행정부의 행동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겠지만 큰 변화가 시작되는 것만큼은 분명해진다.
구글과 아마존은 현지시간 22일 성명을 통해 하원이 추진중인 이번 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 혁신과 반독점으로 점철된 역사
미국 자본주의는 건국을 거쳐 서부로의 영토확장과 자유방임주의를 밑거름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19세기 후반에는 생산력 기준으로 유럽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빠르게 올라섰다.
(사진=셔먼법 발의자 존 셔먼 상원의원/위키피디아)
이 과정에서 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폭력과 협박, 사기가 판치면서 `약탈적 자본주의`로 변모해가자, 결국 1890년 미국의 첫 반독점법인 `셔먼 반독점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미국 석유시장을 독점했던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을 비롯해 각 산업분야별로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초거대기업이 이 법에 따라 규제받기 시작했다.
곧이어 가격담합과 무분별한 M&A를 금지한 `클레이튼 법`, 1914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FTC)가 설립되고, 대공황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글래스-스티걸법까지 제정되면서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경제행위를 본격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의회의 노력 덕분에 부의 독점과 경제 양극화를 상징했던 스댄터드 오일(록펠러), JP모건(모건), AT&T 처럼 시대를 상징했던 거대 독점기업은 분할됐다.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MS)를 상대로 시작된 미국 정부의 반독점법 위반 소송 (윈도우와 익스플로러, 오피스 끼워팔기 혐의)은 기업분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소송기간 동안 MS의 기업가치만 700억달러(약 79조)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제한없는 혁신을 추구하되 시장경제의 질서를 침해할 경우 그 누구도 예외로 두지 않는 미국만의 시스템이 이번에도 작동될 지 주목된다.
자산시장 참가자들의 눈길이 온통 연방준비제도가 자리한 워싱턴으로 쏠려 있지만 워싱턴에는 연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 의회는 내년 말 선거를 앞두고 인프라 투자법안과 함께 이번 반독점법 개정안으로 미국 경제를 새롭게 변모시키려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