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상반기도 어느새 끝을 향하고 있다. 올해 주요 이슈를 뽑으라면 단연 코로나 백신 보급이다. 우리를 끈덕지게 괴롭히던 전염병의 백신 방어 체계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개최된 한미정상회담도 빼놓을 수 없는 이슈다. 이 회담에서 양국은 백신 공급 이외에도 국내 4대 그룹을 위시한 경제 협약을 체결했다. 경제 분야의 괄목할 만한 성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딘가 찜찜하다.
자국 기술력이 머지않아 미국 시장을 선점하리라는 장밋빛 꿈은 우선 제쳐두고, 당장의 국내 기업 생태계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올해 국내 기업의 사정은 내내 팍팍했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 대표들은 “한국에서 기업하기 참 힘들다”며 입을 모았다. 과잉 규제 때문이다.
지난해 재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기업 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과 ‘노동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이 줄지어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올 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 문턱을 넘고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고용주에게 책임을 부과하겠다는 법안이다.
문제는 제재의 수위이다. 고용주는 단 한 번의 사고만으로도 벌금, 기업인 처벌, 영업 정지, 징벌적 손해배상 등 무려 ‘4중 제재’를 부과받을 수 있다.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에는 여러 원인이 있고, 고용주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에도 전적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전례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20년 정부 입법으로 신설·강화된 규제는 총 1,510건으로, 전년보다 55% 늘어났다. 지난 4년 동안 현 정부의 규제 관련 정부 입법 심사 건수는 4,600건이 넘고, 국회에서 발의된 규제 관련 법안은 3,900여 건이나 된다.
오너리스크, 정경유착, 기업 특혜 시비, 노조 대립 등 기업에 대한 네거티브 기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있다.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것은 근본적으로 기업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정서에 기댄 정책이 쏟아지는 것은 과연 옳은가?
실상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중소기업 대표들이다. 비단 규제뿐이랴. 이어지는 세금 폭탄에도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하나의 단위로 본다면 그 비율은 무려 전체 기업의 99.9%(2019년 중소벤처기업부 통계)를 차지한다. 절대적인 규모의 집단 같지만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업종과 상황에 따라 내일의 존립이 불투명한 곳이 허다하다.
기업 생태계도 결국은 사람의 세계다. 사람의 세계가 동물의 세계와 다른 건 강자와 약자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곳에도 약자가 있어, 여건이 충분치 않은 중소기업은 규제 하나에도 휘청인다. 그런데 정부부터가 영세한 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 제약 대상으로 삼아 철퇴를 휘두르고 숨구멍마저 틀어막고 있다.
‘언더도그마(underdogma)’라는 용어가 있다. 사회과학에서 약자를 뜻하는 언더독(underdog)과 맹목적인 견해, 독단을 뜻하는 도그마(dogma)의 합성어이다. 힘의 차이를 근거로 선악을 판단하려는 오류로, 맹목적으로 약자는 선(善)하고, 강자는 악(惡)하다고 인식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업 규제 남발을 보면 이 언더도그마가 떠오른다. 고용주이자 자본을 축적하는 기업을 이 사회에선 악(惡)으로 분류하는 듯하다.
기업은 정말 악한가? 이 질문에 답을 하자면 기업은 기업일 뿐이다. 기업은 중세시대의 부르주아도, 봉건사회의 영주도 아니다.
사회를 흐리는 악인은 현대의 기업만이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대중은 종종 언더도그마의 오류에 빠져 사회를 이분법으로 구분하고 악인을 색출하려 한다. 애석하게도 대중을 이 함정에 빠트리는 것도 악인이다. 이들은 주로 ‘언더독’으로 위장하여 집단을 선동하고 이익을 취한다.
대중은 처음에는 거짓말을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 나치 선전 장관 괴벨스
정말로 악한 자는 누구인가. 이미 주변에는 악한 리더십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니 ‘언더독’을 표적으로 한 사냥은 그만두고 ‘진짜 악’을 발본색원할 때다. 악한 자가 만든 악한 문화에 젖지 않고, 현혹과 이익에 타협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다.
사회의 정의실현과 올바른 시스템 구축은 집단이 아닌 개개인의 선(善)에서 비롯된다. 선악과는 강약을 떠나 기업인, 노동자, 공직자 등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든지 선을 택하고 악을 멀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성자 : 사단법인 글로벌기업가정신협회 회장 & 스타리치 어드바이져 대표이사 김광열>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