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에서 이정재가 연기했던 인물 염석진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염동진(본명 염응택)이 8년간 일제 밀정(密偵)으로 활동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는 계간지 `역사비평` 최신호에 기고한 글에서 "염동진은 1936년 3월 관동군 통화현 산성진 헌병대에 체포돼 밀정이 됐으며, 1944년 3월까지 통화헌병대의 밀정으로 일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염동진은 1940년 6월부터 1944년 3월까지 34차례에 걸쳐 2천418원의 특무비를 수령했다"며 "한순간의 실수나 생존을 위한 일시적 방편으로 관동군 헌병대의 밀정이 된 것이 아니라 직업적 밀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염동진은 `암살`이 흥행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영화처럼 밀정이었다는 주장과 독립운동가였다는 견해가 대립해 왔다.
1909년 평남에서 태어난 염동진은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국립중산대학에 이어 중국 국민당이 지원한 낙양군관학교에 입학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에서 여운형과 김구 암살에 관여했다고 알려진 우익 테러단체 `백의사`에서 총사령으로 활동했다.
정 교수는 염동진이 밀정이었다는 근거로 조선총독부 평안남도 경찰부 보고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안국이 1969년 일제·만주국 자료와 중국 자료 등을 바탕으로 일제 헌병대에서 일한 사람들을 정리한 `일제 관동헌병대 길림성 내 조직개황` 등을 제시했다.
중국 자료는 염응택에 대해 "동북지하당과 항일연군의 조직 정황, 교통 연락망, 식량·탄약의 출처 등 통화지구 중국인·조선인의 시국에 대한 평판을 비밀리에 계속 정찰했다"며 "특무비로 34차에 걸쳐 총 2천481원을 수령했다"고 기술했다.
정 교수는 "1940년대 초반 염동진은 군수 월급 정도로 추정되는 특무비를 받았는데, 이는 염동진이 관동군의 중요 밀정이자 고급 밀정으로 활약했음을 뒷받침한다"며 "1941년에는 일제 군국주의 총동원 조직인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출발을 기념하는 친일 광고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염동진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 단체가 피해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염동진이 김구·이청천·김원봉에 대한 정보와 인적 관계에 관한 내밀한 정보를 일제에 넘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이와 관련해 정 교수는 염동진이 해방 이후 중국 공산당 정보부 고문을 받아 눈이 멀었다고 말한 것은 밀정 이력을 감추기 위한 허위 진술이자 중상모략이었다고 비판한 뒤 1945년 11월 24일 서울에서 발생한 김혁(본명 김승은) 살인 사건을 소개했다.
정 교수는 신문에 실린 증언과 당시 사건을 조사한 특무대장 나병덕 증언 등을 토대로 살인범은 김혁과 낙양군관학교를 함께 다닌 염동진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염동진은 자신의 밀정 행적을 정확히 알고 있던 독립운동가 김혁을 암살함으로써 자신의 경력을 숨기는 데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제 패망 후 남이나 북 어디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민족 반역자였던 염동진은 자신의 극우 반공 테러가 독립운동의 연장인 것처럼 위장했다"며 "한국인들이 해방의 빛에 환호하던 시점에 친일 밀정은 미소 분할점령과 냉전의 전개에서 생존 기회와 출세 가능성을 엿보았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CJ CG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