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 재원을 충당하기 위한 증세론이 여권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난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여당에서 증세론이 쏟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반영한다.
세금을 올린다는 것은 어느 정권에나 `뜨거운 감자`다. 증세는 자칫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부자 증세든 보편 증세든 세금 좋아할 국민은 없고 내부 분열이 빚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재정으로 늘어나는 복지를 떠받친다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즉흥적 좌충우돌식 증세론보다는 국가 경제와 미래 복지 체계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방법론을 도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여권에서 불거진 증세론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 가운데 한 명인 이재명 지사는 지난 23일 페이스북에서 우리나라 복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절반에 불과하다면서 증세를 통해 기본소득 등 복지를 늘려가야 한다고 했다.
이 지사는 "빈자의 지원금을 늘리려고 혜택을 못 받는 부자와 중산층에 증세를 요구한다면 조세저항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면서 "기본소득 목적세를 걷어 전액 공평하게 배분한다면 80∼90%의 압도적 다수가 내는 세금보다 받는 소득이 많아서 증세 동의가 쉽다"고 했다.
기본소득제 찬성론자인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1인당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연간 180조원이 필요하다"며 부가가치세 3% 인상 필요성을 거론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고소득자와 100대 기업 등을 대상으로 소득세·법인세를 한시적으로 올리는 내용의 `사회적연대세법` 발의를 준비 중이다. 같은 당 이원욱 의원은 코로나 손실보상제 재원을 위해 3년간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 1%를 인상하자고 제안했다.
이낙연 대표가 주도하는 신복지제도 관련 전문가 그룹에서도 증세 필요성을 거론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5일 국회 혁신적포용국가미래비전 초청 강연에서 보편적 사회보호제도인 신복지제도의 재원 마련을 위해 향후 20년간 4단계에 거쳐 점진적으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증세를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조세감면 폐지와 축소, 소득세 중심의 누진적 보편증세, 사회보장세(기여금) 증세, 부가가치세 증세로 이어지는 단계적 증세론을 폈다.
여당 내에서 증세론은 무성하지만 방향성은 없어 보인다. 한쪽에서는 부자증세나 보편 증세를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이유로 증세 추진에 부정적이다.
이낙연 대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지난 14일 신복지제도 재원과 관련 "구체적으로 증세가 먼저 나올 일은 아니다"라며 "성장을 지속하면서 재정 수요를 충당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 보편 증세냐 부자 증세냐
증세론은 사실 정치권보다 학계에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저출산 고령화 속에서 날로 늘어나는 복지 비용을 지금의 재정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급팽창한 긴급 구제 수요도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복지지출을 계속 늘리려면 나라 가계부를 맞춰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서 "막판까지 미뤘다가 한꺼번에 세금을 올리면 저항이 심해 추진이 어렵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올려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다음 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 증세해야 한다"면서도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다만 "증세를 정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면 미래 국가 체제와 관련되는 만큼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재정 건전화와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어떤 방식으로 증세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렸다.
김진방 교수는 "기본소득이나 복지의 보편화라면 보편 증세를 해야 하지만 소득양극화 문제 해결이 당면한 사회적, 국가적 현안이라면 부유한 계층이 더 많은 부담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소득세나 재산세율을 높여야 하며 특히 주택이나 토지 보유에 따른 귀속 소득이나 자본이득 등 자산가치 상승에 따른 세 부담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규철 실장은 "세율을 높이기보다 세원을 확대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면서 "비과세, 감면, 면세계층이 많은 만큼 이쪽을 먼저 손본 다음 세율을 올리되 부가가치세, 소득세, 법인세 등 어느 세목을 올려야 하는지는 이해가 첨예하게 갈릴 수 있어 공론화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한테 세 부담을 늘려 수직 형평성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래서는 충분한 세수 확보가 어렵다"면서 "결국은 과세 기반을 넓혀 낮은 세율로 많은 세수를 확보할 방안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환경 관련 세금이든 부가가치세든 보편 성격의 소비세 증세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