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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인정한 환경부·아우디, 피해자 없으면 끝인가 [배성재의 Fact-tory]

입력 2021-01-22 07:00
수정 2021-01-2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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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전기차 검증·인증 드러낸 환경부
디젤 게이트 겪고도 안일한 아우디
"주행거리 표준 만드는 계기 삼아야"
《Fact-tory는 산업(Factory) 속 사실(Fact)과 이야기(Story)들을 다룹니다. 곱씹는 재미가 있는 텍스트를 전달드리겠습니다.》

"e-트론의 독일 본사 인증 서류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내부 검토 없이 곧장 환경부에 제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환경부 인증이 나왔다."

첫 제보를 받았을 땐 그 진위가 의심스러웠습니다. 환경 인증의 최상위 기관인 환경부가 업체 제출 자료를 그대로 인증해 줬다? 거기에 인증 대상이 배출가스 조작으로 판매 정지까지 당했던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라니. 의심을 갖고 취재를 시작했지만 취재가 더해질수록 제보 내용은 점점 사실과 가까워졌습니다.

첫 단추는 정부의 `저공해차 통합 누리집`에 소개된 1회 충전 주행거리였습니다. 환경부는 전기차가 추울 때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1회 충전 주행거리의 상, 저온 상태를 구분합니다. 상온 측정 온도는 영상 23℃, 저온 측정 온도는 영하 7℃입니다. 통상 대부분의 전기차가 적게는 30km, 많게는 80km 넘게 차이가 나지만, e-트론(e-tron 55 quattro) 만은 예외였습니다. 상온에서 307km, 저온에서 306km. 상온-저온 주행거리가 단 1k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한 수치였습니다.

환경부에 확인했습니다. "회사 측이 제출한 e-트론의 (주행거리) 시험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조치를 준비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인증을 내줄 때 어떤 시험 방법을 사용했냐고 물었습니다. "아우디의 측정 방식이 미국의 기준을 따랐더라"라는 도돌이표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환경부 자체적인 측정 없이 업체의 제출 자료를 그대로 인증해 준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겁니다.

● "특혜도 아닌데 뭘"…검증 놓친 정부 황당 해명
첫 기사가 나간 뒤 환경부의 공식 입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새로운 저온 주행거리 값을 제출했고, 환경부도 자체적인 e-트론의 1회 충전 주행거리 측정을 위해 산하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에 e-트론을 입고함(전기차 중 첫 사례) ▲아직 e-트론은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특혜를 받거나 한 사례는 없음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환경부가 제출 자료를 그대로 인증한다는 전제가 깔린 답변들입니다.

사태가 커지자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도 입장을 내놨습니다. ▲저온 주행거리를 미국 환경청(EPA)의 측정 기준에 따라 잘못 측정함 ▲지난해 12월에 이를 파악했고, 환경부에 신고했다는 해명입니다.

둘 모두 해명보다는 변명에 가깝습니다. `어떤 실수가 벌어졌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환경부의 보도 설명자료
● `디젤 게이트` 겪고도 구태 반복…환경부·아우디 믿어도 될까
이번 사안의 핵심은 `환경부가 자체 검증 없이 개별 업체가 주장하는 전기차 주행거리를 인증해 준다`라는 것입니다. 과연 환경부가 자동차 관련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처는 황당하기만 합니다. 검증 과정이 왜 잘못되었는지,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빠지고 "아직 e-트론은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특혜를 받은 것은 없다"라는 방어적인 설명만 뒤따랐습니다.

정부의 이런 느슨한 인식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어설픈 대처로 이어집니다. `디젤 게이트`로 퇴출 위기까지 갔던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이후 소비자 신뢰 회복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공공연히 밝혀왔습니다. 르네 코네베아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사장도 지난해 말 "신뢰 회복이 최우선"이라며 특히 "기술인증준법부 개편 등 조직을 개선 중에 있다"라고 콕집어 말했습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2015년 디젤 게이트 당시 3-5명이었던 그룹의 인증관리 인력은 실제로 20명 규모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정도 노력이었다면 이번 `배터리 게이트`가 발생할 수 없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측은 "미국 기준을 내고 착각했다"라는 변명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1억을 호가하는 전기차를 판매하는 회사가 왜 인증을 엉터리로 했는지,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요구되는 대목입니다.

● 아우디는 시작일뿐…전기차 시대, 환경부는 준비가 덜 됐다
환경부의 해명대로 이번 소동으로 인해 직접적인 수혜를 받거나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판매된 e-트론 601대 중 저온 주행거리가 인증된 9월 이후 판매된 e-트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없는 것으로 그칠 일은 아닙니다. 전기차 구매의 결정적인 요소인 주행거리 검증·인증이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 국제표준시험방식(WLTP)과 미국 환경청(EPA) 기준 등을 떠올려보면, 이상한 수치를 그대로 검증·인증해 준 환경부도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문제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행 저온 주행거리 측정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어 섭니다. 환경부는 저온 주행거리 측정 시 `히터의 모든 기능을 최대로 작동한 상태에서 주행`을 기준으로 합니다. 또 저온 주행거리가 상온 주행거리의 60% 이상이어야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히터를 최대한으로 트는 일이 드문 만큼 상당히 가혹한 기준이라고 지적합니다. 미국 환경청(EPA)처럼 `성에제거만 작동한 상태에서 주행` 기준도 합리적인 저온 주행거리 측정 기준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다 보니 업체 별로 전비 기술에 따라 히터의 최고 온도도 제각각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인 EQC400는 히터 최대 온도값을 유럽 모델보다 4도 낮춘 28도로 설정해 환경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전기차 시대에 환경부가 준비할 일은 쌓여있습니다. 주행거리 검증·인증의 허술함을 보여준 이번 소동이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환경부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지만, 그보다 앞으로 전기차 주행거리 검증·인증에 대한 대책이 우선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도 WLTP와 EPA 기준과 같은 `존중받을만한` 전기차 주행거리 표준을 만들 수 있길 기대합니다.

※ 관련 기사:
[단독] 아우디, 이번엔 배터리 게이트... e-트론 `엉터리 인증` ☞ https://bit.ly/3qyRetq
[단독] 아우디 `엉터리 인증` 또 놓친 환경부 ☞ https://bit.ly/3o5OF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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