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고인이 된 이건희 삼성 회장은 `경제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故 이건희 회장의 일대기를 이지효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고인이 된 이건희 회장은 1942년 대구에서, 이병철 선대회장의 세 아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습니다.
부모와 떨어져 긴 시간을 보낸 이 회장은 스스로 `외톨이`였다고 회상합니다.
외로움을 타다 보니 개를 기르기도 하고, 영화에 심취해 일본 유학 3년 간 1,200편 이상을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룹 후계 구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이 회장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초.
이병철 선대회장은 장남인 이맹희 씨에게 먼저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창업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차남인 창희 씨는 청와대에 삼성의 비리를 고발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사건으로 눈 밖에 났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이병철 선대회장이 타계하자 삼성그룹 총수 자리에 오릅니다.
<현장음> 이건희 / 삼성그룹 회장 (87년 취임식)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당시엔 허황된 소리처럼 들렸던 그의 취임 일성은 결국 현실이 됐습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던 `신경영 선언`을 기점으로 굵직한 이정표를 만든 겁니다.
국내 재계 3위에 그쳤던 삼성은 이제는 한국 경제의 상징이 됐고, 이 회장은 파이낸셜타임즈가 선정한 존경받는 기업인에, 또 포춘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인의 반열에 올랐지만 수줍은 성격으로 공개 석상에 나서는 것을 꺼려, `은둔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던 이 회장.
마지막까지 `변화와 혁신`을 외치던 이건희 회장은 78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국경제TV 이지효입니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