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 씨의 그림 대작(代作) 사건의 유무죄 판단을 두고 검찰과 피고인 측이 대법원에서 격론을 벌였다.
검찰 측은 그림의 상당 부분을 조수가 완성한 사실을 구매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은 `사기죄`에 해당한다며 몰아붙였다.
반면 조씨 측은 조수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이미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관행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고지할 의무는 없다고 맞섰다.
28일 오후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조 씨의 `그림 대작` 사건 공개 변론에서 검찰과 조 씨 측은 엇갈린 1·2심 판결을 재연하듯 미술 작품의 정의와 미술계 관행에 대해 적지 않은 인식 차를 보였다.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화가 송모 씨 등이 그린 그림에 가벼운 덧칠 작업만 한 작품 21점을 17명에게 팔아 1억5천300여만원을 챙긴 혐의(사기)로 불구속기소 됐다.
1심 재판부는 작업에 참여한 송씨가 단순한 `조수`가 아닌 `독자적 작가`라고 판단해 그림 대작을 구매자들을 속인 행위로 보고 조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이를 뒤집어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미술 작품은 화투를 소재로 하는데, 이는 조영남의 고유 아이디어"라며 "조수 송씨는 조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 보조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날 공개 변론의 주요 쟁점은 미술작품 제작에 제3자가 참여한 경우 이를 작품 구매자에게 알릴 의무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검찰 측은 조씨의 작품 `항상 영광` `꽃과 콜라`를 제시하며 "이들 작품에서 조씨가 한 작업은 알파벳 글자 길이 연장, 서명 수정, 배경 덧칠 등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씨가 이런 사실을 판매자에게 알리지 않고 고가에 판매해 판매자를 속였다고 주장했다.
또 송씨 등에게 그림을 대신 그리게 하면서 구체적인 지시나 감독을 하지 않았다며 이들은 조수가 아니라 `대작 화가`라고 강조했다.
조씨 측은 이에 대해 조수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미술계에 이미 흔한 일로 일반적으로 작품을 거래할 때 적극적으로 고지할 사항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조씨가 방송 등에 출연해 조수와 함께 작업하는 공간을 공개한 점 등을 들며 조수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완성한 사실을 고의로 숨긴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술 작품의 개념에 대한 판단도 양측이 첨예하게 갈렸다.
검찰 측은 "미술 작품을 평가할 때 화가의 숙련도, 색 배합, 표현 방식, 작가가 직접 그렸는지 여부 등이 매우 중요하다"며 색을 칠하는 작업에 거의 관여하지 않은 대작 그림은 조씨의 작품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반면 조씨 측은 "20세기 초반부터 이미 붓 터치는 회화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조씨의) 화투 그림은 팝아트 계열의 개념 미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직접 그림을 그렸는지 여부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나 개념이 미술작품 평가에 더 중요하다는 취지다.
조씨의 작품 역시 화투를 소재로 한국인의 이중성을 보여주려 했다는 점에서 엄연한 조씨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조씨는 "화투 그림이 어떤 방식으로 그려졌나보다 창의적인 제목(주제)에 주목해달라"라며 "앞으로 겸양 사회에 보탬이 되는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화투를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한다고 그랬는데 제가 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가지고 놀았던 것 같다"며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대법원은 추후 판결 선고일을 공지할 예정이다. 통상적으로 공개 변론 뒤 한 달 내 판결 선고가 이뤄진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