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으로 확산한 데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중간 숙주로 지목되는 천산갑 보호 노력에 소홀한 미국 정부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예방하는 데에 필수적인 야생동물 보호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지난 5년간 미국의 야생동물 보호 단체들은 정부가 천산갑에 멸종위기종보호법(ESA)을 적용해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천산갑은 고기와 비늘이 일부 국가에서 고급 식자재나 전통 약재로 쓰이며 세계적으로 대규모 밀거래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 내 천산갑이 서식하지는 않지만, 미국 정부가 보호 조처에 나서면 천산갑의 불법 거래를 단속할 수 있고 국제 사회에 이 종을 보호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내보낼 수 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그 전의 오바마 행정부 모두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문제는 천산갑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를 보균해 박쥐 등과 함께 잠재적 중간 숙주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밀거래를 통해 이들을 세계 곳곳에 전파한 결과 코로나19가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국제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미국이 천산갑 밀거래 방지 조처를 선제적으로 취하지 않아 코로나19 대유행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가디언은 "트럼프, 오바마 정부가 천산갑 등 야생동물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은 점은 국제 사회의 야생동물 보호 노력에서 미국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앞으로도 코로나19 같이 동물을 매개체로 인간에 전파되는 유행병을 예방하기 위해선 미국이 야생동물 보호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이 야생동물 거래 등을 통해 건강한 생태계를 교란했을 때 새로운 병원균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야생동물 보호단체인 에코헬스연맹의 조나단 엡스타인 부회장은 "생태계가 교란되기 시작하면, 즉 인간이 야생동물과의 접촉을 늘리면, 병원균이 동물에서 인간이나 가축으로 옮겨갈 기회가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한때 미국은 야생동물 보호와 관련해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1973년에 ESA를 통과시켰고, 이는 같은 해 81개국이 참여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미국이 이런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매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는 종의 수를 줄이는 등 ESA의 효력을 약화하고 있으며, 미국 연방 어류·야생동물 관리국(FWS) 예산을 삭감하려 하기도 했다.
환경단체인 생물다양성센터(CBD)의 공무 담당 부서장인 브렛 하틀은 "단 한 가지 조처가 팬데믹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예전처럼 국제 사회의 야생동물 보호 노력을 이끌며 중국 등 국가에 천산갑 등 동물의 밀거래를 단속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면, 사태가 지금과 같진 않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