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의약품 수출국인 인도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약품 수십종의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지, 세계적으로 의약품 부족 사태를 촉발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의약품 원료 생산을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의 의약품 원료 생산이 크게 줄어 `중국발 의약품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이달 3일 인도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원료 부족을 염려해 의약품 주성분 26종에 대해 수출을 제한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도 정부가 당분간 수출을 금지한 품목에는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성분) 등 해열소염진통제, 에리스로마이신 등 항생제, 프로게스테론(피임약 성분) 등 호르몬제 등 필수 의약품이 다수 포함됐다.
인도의 수출 제한 대상은 전체 의약품 수출의 무려 10%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결정은 인도 제약산업이 원료의 70%를 중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인도에 원료를 공급하는 공장 다수가 코로나19 발원지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에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후베이성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인도가 확보한 원료 재고 수준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인도에서 의약품 주성분, 즉 `활성 원료의약품(API)`을 다량 조달하는 유럽 제약업계는 비상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의약품수출입협회 디네시 두아 회장은 이날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인도 정부가 수출을 금지한 품목 중 일부는 유럽과 미국 전역으로 수출하고 있어 이들 지역에 미치는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도 정부의 이번 수출 제한 조치로 현재 인도 항구에 발이 묶여있거나, 조만간 선적할 예정이었던 제품들의 가격을 따져보면 1천만달러(약 119억원)에 달한다고 두아 회장은 추산했다.
두아 회장은 "인도 약제에 크게 의존하는 유럽에서 전화가 쏟아진다"며 "유럽 복제약(특허 만료 의약품)의 26%가 인도산이다 보니 (인도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로) 그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인도의약품수출입협회는 인도 상공부 산하 대외무역총국에 서한을 보내 이번 수출 제약 조치로 인도의 대외 이미지가 손상될 뿐만 아니라 인도 제약회사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 폴 몰리나로 물류지원운영팀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인도 정부의 조치가 현재로서 개인 보호장비 마련에 제한을 줄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로 인해 약품이 부족해질 우려는 있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제약회사들이 의약품 원료 생산을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중국의 생산 차질로 인한 `중국발 의약품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SCMP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주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특정 약품이 공급부족 상태라고 발표했다.
FDA가 약품명이나 제조회사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 공급부족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중국의 의약품 생산 차질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FDA 스티븐 한 국장은 "코로나19 확산이 미국 내 주요 의약품 공급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이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중국에서만 조달 가능한 원료에 의존하는 의약품이 20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세계 제약회사들의 중국산 의약품 원료 의존도가 70%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에 의약품 원료를 공급하는 중국 내 공장의 상당수가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우한(武漢)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항생제, 당뇨약, 에이즈 바이러스(HIV) 치료제, 해열제 이부프로펜 등은 중국 의존도가 워낙 높아 중국의 생산 차질로 인해 받을 충격 또한 그만큼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SCMP는 "미국이 수입하는 의약품 원료의 80%가 중국과 인도로부터 오고 있다"며 "글로벌 제약사들은 의약품 원료를 중국에 아웃소싱하는 데 열을 올렸지만, 이것이 불러올 수 있는 전략적 위험은 인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