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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가 5G 스마트폰을 출시했다고?"
이달 초 '카카오' 수식어가 붙은 스마트폰이 나온다는 소식에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금융부터 택시까지 워낙 방대한 사업영역을 가지고 있는 카카오이기에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단말기 출시는 다른 얘기여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카카오 계열사 '스테이지 파이브'가 중국 ZTE 5G 스마트폰을 ODM(제조사개발생산)방식으로 국내에 출시한다는 내용이더군요.
카카오 애플리케이션이 선 탑재돼 나오는 바람에 당장 카카오가 스마트폰 사업에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카카오는 극구 부인하며 "계열사에서 내놓은 제품"일뿐 이라고 한 발 뺐는데요. 스테이지 파이브 역시 "카카오가 단말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심하는 분위기입니다. 호형호제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기껏 단말기를 출시한다면서 '카카오'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홍IT인간' 시간에는 '스테이지 5G'에 대한 분석과 함께 카카오 계열사가 5G 단말기를 내놓은 이유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 중국 5G 스마트폰을 선택한 이유
제품은 일부 로고가 바뀐 걸 제외하면 지난 8월 중국에서 출시된 ZTE의 '엑손 10 프로 5G'를 그대로 가져오다시피 했습니다. 6.47인치 FHD+ 아몰레드(AMOLED) 디스플레이에 퀄컴의 스냅드래곤855를 탑재했고 6GB램에 128GB 스토리지를 지원합니다. 4,800만 화소 일반각, 2,000만 화소 광각, 800만 화소 망원까지 후면 트리플카메라도 장착했죠. 전면 카메라도 2,000만 화소에 달해 스펙만 따지면 플래그십에 준하는 모델입니다. 가격은 81만4,000원으로 책정됐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왜 중국 'ZTE'일까요? 5G 스마트폰 단말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만한 회사를 찾다보니 ZTE가 가장 적합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인데요. 5G 단말이 대부분 100만원을 훌쩍 넘는 시점에서 보급형 단말은 국내에선 삼성전자밖에 없지만 중국에선 샤오미, 비보, 오포, ZTE 등 수많은 제조사가 생산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굳이 자사 로고를 지우고 '스테이지 5G'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할 이유는 없을 테니 중국 제조사 가운데 가장 사업적 니즈가 맞는 ZTE를 선택한 것이죠.
● 카카오 계열 5G폰, 성공 불확실하지만…"또 나온다"
'카카오폰'이라는 수식어와 다르게 카카오가 드러나는 포인트는 많지 않습니다. 1)카카오내비, 카카오T, 카카오페이지, 카카오페이 선 탑재 2)카카오 쿠폰 제공, 이 두 가지만이 '스테이지 5G'와 카카오를 연결해줍니다. '잠금화면 앱 바로가기 설정'에서 카카오의 애플리케이션들을 배치해 놓을 수도 있지만 카카오와의 연결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마저도 선 탑재 앱들을 지우면 일반 스마트폰과 다를 게 없어집니다.
카카오에서 제공하는 쿠폰은 카카오페이지 3,000캐시, 프렌즈타운 20 다이아몬드, 프렌즈마블 50루비 상당인데 계산해보니 현금으로 1만2,000원 수준입니다. ‘잠금화면 앱 바로가기’설정도 이번 ‘스테이지 5G’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원래 ZTE '엑손 10 프로 5G'에 있는 기능으로 카카오 앱들을 설정을 통해 빼놓을 수 있습니다. 카카오 캐릭터가 프린팅돼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결과적으로 카카오만의 차별화 요소를 찾기는 힘듭니다. '액손 10 프로' 제품 자체로만 평가하면 무선충전과 스테레오 스피커가 지원된다는 점 정도입니다. 삼성전자의 79만원대 5G 보급형 스마트폰 갤럭시A90은 이 기능들을 지원하지 않습니다.(대신 동영상 떨림 방지 '슈퍼스테디'와 '삼성페이'가 되죠)
소비자 입장에서 보급형 5G 스마트폰의 선택지가 생겼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삼성 대신 ZTE 스마트폰을 선택할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TG삼보 서비스센터가 AS를 지원해 수리 걱정은 덜었지만 온라인에서 자급제만 유통하는 탓에 판매경로가 많지 않습니다. 당장 큰 성과를 거두기 힘든 사업에 '카카오'이름을 대대적으로 내걸 순 없겠죠. 카카오만의 기능도 애매한 단말기에 '카카오폰'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힘든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스테이지 파이브 관계자는 "스테이지 5G 외에도 새로운 5G 단말기를 준비해 또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 구글·아마존도 도전한 스마트폰…결국 플랫폼 확장
의문이 생기는 자신감의 근거는 '스테이지 파이브'의 사업영역을 보면 조금 엿볼 수 있습니다. 스테이지 파이브는 공식 홈페이지에 ‘카카오의 수많은 서비스 콘텐츠와 다양한 혜택은 5G 통신 서비스에 새로운 가치 창출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키즈폰 출시 등 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스마트폰 네트워크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카카오의 콘텐츠와 5G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는 겁니다. 실제 스테이지 파이브는 KT와 업무협약을 통해 카카오 콘텐츠 전용 5G 요금제 내놓을 계획인데요. 최근 카카오가 SK텔레콤과 3,000억원의 지분 교환을 진행한 것으로 미뤄볼 때 더 많은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플랫폼 기업의 하드웨어 진출은 놀랍지만 이례적이진 않습니다. 구글은 넥서스 시리즈에 이어 픽셀폰 시리즈를 꾸준히 내놓고 있습니다. 비록 적자를 떠안고 실패로 끝났지만 아마존의 파이어폰도 잊혀질만하면 재출시설이 흘러나오고 있죠. 스마트폰 점유율 그 자체를 확대하기 보단 자신들의 플랫폼을 확장할 기기를 늘릴 목적입니다. 국내 통신사를 포함해서 해외 공룡 IT기업들이 너도나도 인공지능(AI) 스피커를 내놓는 이치와 같은 것이죠. 5G 상용화와 함께 플랫폼의 역할이 커지고 콘텐츠의 양이 더 많아지면서 디바이스의 중요성은 더 부각되는 중입니다.
● '돈' 버는 카카오…자체 스마트폰 기대해도 될까
최근 카카오의 서비스와 콘텐츠는 늘어가고 있습니다. 실제 올해 카카오의 3분기 매출은 7,83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992억원)보다 31% 늘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플랫폼과 콘텐츠 매출이 동반 상승했다는 건데요. 카카오톡에 광고를 싣는 톡보드와 모빌리티·카카오페이 매출이 동반 상승하면서 플랫폼 매출도 같은 기간 39% 늘었고, 카카오페이지 웹툰 이용 증가로 콘텐츠 부문도 50% 넘게 성장했습니다. 음원 플랫폼 '멜론'에만 의지하던 상황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다시 말하면 단말기와 요금제에 담을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는 거겠죠.
직접 써본 '스테이지 5G'는 아직 중국 보급형 5G 단말기를 한국에 공수해온 수준에 그칩니다. 회사 측은 의미 있는 판매량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지만 소비자들의 5G 단말 선택지 안에 들어갈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다만 다음 단말에서 카카오만의 색깔을 살려 '카카오택시 할인 전용' 요금제, '카카페이지 결제 할인 요금제' 등을 담는다면 어떨까라는 기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꿈보다 해몽이 너무 좋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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