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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스튜어드십코드' 왜 국민연금만 책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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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잘라서 나눠 가질 때, 한 사람은 자르고 다른 사람이 고르게 해야 합니다. 내가 자른 걸 내가 고르면 내 것이 가장 커질 수 밖에 없겠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 당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함에도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에 대해 지난 2017년 법원이 배임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스튜어드십코드(stewardship code) 활성화를 위해 이를 되짚어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관심이 쏠린다.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돼 1심과 2심 모두 유죄, 징역 2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됐다.

법원은 캐스팅보트(casting vote)라는 우선적 지위가 있었음에도 불공정한 합병 비율을 찬성해 주주로써 이익을 보호받지 못한 것을 국민연금의 배임 행위라고 판단했다.

스튜어드십코드 관련 책임을 오직 표 대결에서만 찾은 건데, 이것 만으론 충분치 않단 설명이다.

이상훈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합병비율 확보 책임은 (해당) 회사 이사에게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할 의무를 지움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간명하고 사리에 맞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사의 선관의무 범위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를 포함시키면 앞선 삼설물산 사례와 비교해 절차가 더욱 간소해진단 이야기다.

선관주의 의무는 선량한 관리자 주의 의무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를 해야 한다는 의무를 말한다.

선관주의 의무를 이사 등 임원들에게 부여할 경우, 이들은 자칫하면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주주들의 비례적 이익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경우에, 임원들이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불공정한 합병 비율을 산정하기에 앞서 주주권익 침해 발생 가능성으로 인한 소송 등을 고려할 수 있는 절차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일반 주주를 포함해 국민연금이란 국내 대표 기관투자가 마저 피해를 입는 이런 일은 최소한 미리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판단이다.

이 교수는 "법인 계좌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배후에 주주 간 이해상충과 부의 이전 문제는 무시할 것이냐, 아니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장할 것이냐"가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 주류 해석론은 평면적 관점에 머문 나머지 다양한 이해 상충과 부의 이전이 일어나고 있는 단체 내부의 공간을 들여다보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이사의 선관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회사의 임원 등이 소수주주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주주와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나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회사가 주주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경우,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 회사의 임원 등에게 막대한 배상 책임이 발생하는 탓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주주권 행사는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전부라 할 수 있고 이 경우 지배주주의 승리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한 주주행동주의 관련 전문가는 경제학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저서 `스킨인더게임`을 예시로 들며 "대기업들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래에 큰 책임을 부여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법과 규제를 계속해서 고쳐 누더기 법안을 만드는 것보다 잘못된 거래에 대해 쉽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대안을 찾는 게 깔끔하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이런 제도를 만드는데 초석이 될만한 `상법상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 개정안`이 최근 개인과 기관투자자 등이 주체가 돼 국민참여입법센터에 제안됐다.

하지만 재계와 일부 정치권은 기업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단 논리로 스튜어드십코드와 5%룰 완화마저도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주 권익 보호와 주주권 행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례 등을 계기로 기관투자가의 책임이 강화된 스튜어드십코드가 시행되었지만 본질적인 대안으로는 부족하다. 일반주주가 회사와 지배주주의 잘못된 의사결정과 거래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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