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특공대는 현장의 기자들이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며 쓸모있는 정보를 전해드리는 체험형 영상 취재기입니다. 소비자·유통 전문기자와 함께 화제가 된 라면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 안성탕면만을 고집하는 이유와 함께 할아버지의 건강상태를 체크해봤습니다. 할아버지만의 비밀레시피는 덤입니다.》
48년째 삼시세끼 모두 라면만 먹어 화제가 된 박병구 할아버지, 궁금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든 가는 별별기자들, TMI특공대가 지난 24일 강원도 화천군에 직접 가봤습니다.
사실, 이 핑계대고 간만에 좀 멀리 나갈 수 있어 신이 난 건 비밀입니다. 괜스레 날도 좋은 거 같고, 간만에 공기도 좋은 거 같네요. (쏟아지는 보도자료, 오늘은 모르겠다. 후배야 고생 좀 해라, 난 박 할아버지 뵙고 올라니까~)
저 멀리 할아버지 한 분이 보입니다. 혹시나 싶어 냉큼 달려가 인사해봤죠. "라면만 드신다는 박병구 할아버지 맞으세요?" 그런데 이게 웬일, 손사래를 치십니다. 제가 찾는 분이 아닌 걸까요? 주소를 보니 박병구 할아버지 댁은 맞는데......할아버지는 듣지를 못하시네요. 인터뷰 가능한 걸까요? 걱정이 밀려옵니다.
'멘붕'이 오려던 찰나,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최정숙 할머니께서 산불방지 일을 마치고 급히 집으로 오셨습니다. 박 할아버지의 48년 라면인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아내분이죠.
● 할아버지의 비밀 레시피…'내려치고 부수고'
잠시 얘기를 나눈 뒤, 할아버지가 라면 끓이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라면 물을 올리시고, 박스에서 라면을 꺼낸 뒤 싱크대에 툭툭 내려치십니다. 라면봉지 뜯는 기술이 엄청나네요. (91세에 저런 박력이 나오다니~!!)
봉지에서 라면을 꺼낸 뒤 잘게 부숩니다. 라면 다들 부셔보신 적 있죠? 생라면에 분말 스프 뿌려서 먹는 라면스낵 크기입니다. 이가 안 좋아지신 후부터는 저렇게 라면을 잘게 부숴 끓이신다고 하네요.
● 정말 궁금했어요…"30년째 안성탕면만? 건강은요?"
솔직히 전 할아버지를 뵈면 여쭙고 싶던 게 몇 가지 있었습니다. ▶ 어떻게 라면을 48년째 드시는지 (솔직히 전 하루에 라면 두 번도 못 먹겠더라고요. 그런데 48년째 라면이라니,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 정말 라면만 먹었는데도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어렸을 때 라면 많이 먹지 말라고 혼나본 적 다들 있으시죠? 저도 그랬거든요. 밀가루는 소화도 잘 안되고 몸에 좋지 않다고 하도 세뇌를 당해서...ㅋ) ▶ 라면도 종류가 많은데, 왜 굳이 안성탕면인지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안성탕면 말고 다른 라면 더 좋아해. 이러면 꽤나 충격적이겠죠?! 저 그럼 단독 쓸랍니다.ㅋㅋㅋ)
라면이 끓여지는 동안, 저의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 들어갑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라면이 안성탕면이예요?" 두둥~
사실이었습니다. 과거 삼시세끼 라면만 드신다는 할아버지 사연이 소개되자 타사 라면업체에서도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ㅁㅁ라면을 댁에 놓고 갔고, 할아버지께 끓여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단호하게 "난 이거 싫다"고 하셨다네요. 그 뒤로 그 업체는 두 번 다시 할아버지 댁을 찾지 않았다고...(띠로리~)
이번에는 다른 질문! "할머니, 농심에서도 라면 종류 많잖아요. 신라면도 있고, 그건 안 맞으시데요?" 역시나 할머니도 시도해보셨더라고요. 한 번은 안성탕면 말고 신라면을 갖다 달래서 먹어봤지만! 할아버지는 안성탕면만 좋다고 하셨답니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하고, 할아버지는 안성탕면을 좋아하고?)
● 할아버지가 끓인 라면 맛은?…"한입크기 꼬들꼬들"
안성탕면만 고집하는 박병구 할아버지의 라면, 과연 어떤 맛일까요? 라면도 다 끓여졌겠다. 안먹어볼 수가 없겠죠? 슬슬 시동을 걸었습니다.
"할아버지, 라면 너무 맛있게 드시는 거 아니에요? 저도 조금 먹어봐도 될까요?" 할아버지의 일용할 식량을 뺏는 거 같은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너무 궁금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궁금하시잖아요. 맛이 어떨지...제가 대신 무례를 무릅쓰고 도전해 본겁니다! 사실 배도 고팠어요ㅠ)
할머니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재빨리 움직였습니다. 얼른 그릇부터 꺼내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 숟갈 떠봤습니다.
이게 웬일, 딱 알맞네요? 할아버지가 잘게 부숴서 끓이셨는데, 한 숟갈 딱 떠서 먹기 좋습니다. 한입 크기라고 해야할까요? 역시 48년째 드셨다더니, 사실인 거 같습니다.
게다가 뜨겁기도 딱 맞아요. 할아버지가 라면을 끓이자마자 바로 내려놓으셨거든요? 엄청 뜨거울 줄 알고 긴장하며 입에 넣었는데, 혀가 데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뜨겁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꼬들 라면을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저도 꼬들 라면 좋아하는데...그래서 더 맛있었나봐요~ 푹 퍼진 라면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그건 제 편견이었습니다ㅎㅎ)
국물은.....한 번 더 먹어볼래요.(한입 갖고 평가하기엔 객관적이지 않을 거 같아서, 이 핑계로 한 입 더 먹었습니다)
국물도 딱 적당했어요. 할아버지가 끓인 라면이 맛없으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까 고민했는데, 한 입 먹어보고는 걱정이 싹 사라졌습니다.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라면을 얻어먹은 만큼 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텃밭관리를 도왔답니다. 그런데 과연 제가 잘 도왔을까요? 농사 망친 건 아닌지......이건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보시죠!)
그런데 왜 할아버지는 라면만 드시는 걸까요? 할아버지의 48년 노하우가 담긴 이 라면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 할아버지의 유일한 영양공급원 '라면'
어느 날부터인가 할아버지는 어떤 음식을 먹든 토해버리게 된 겁니다. 당시 할아버지는 장 협착증을 앓았는데요. 좁아진 장 통로에 소화·흡수가 어려웠고 수술까지 받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라면을 끓여드렸는데, "그건 괜찮다"며 잡수신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 20년간은 직접 사다 드셨고, 그 이후 라면 회사에서 할아버지의 사연을 알게된 후 1994년부터 안성탕면을 무상제공하고 있습니다. 세 달에 한 번씩 할아버지 댁을 방문해 9박스의 라면을 전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연세가 91세이신 만큼 건강이 염려됩니다. 다행히 제 기사<"30년간 안성탕면만 먹어"…망백(91세) 맞은 라면 할아버지>를 보고 관심을 가져주신 한의사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요청을 드렸더니 흔쾌히 할아버지 댁을 찾아 몸 상태를 직접 보고 검진해 주셨는데요. "의사선생님~ 할아버지 건강 상태, 정말 괜찮은 건가요?"
정말 다행히도, 연세에 비해 나름 괜찮은 상태를 유지하고 계시다고 하네요.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기력이 많이 떨어져 있고 염려스런 부분도 있지만요.
"그런데 계속 라면만 드셨는데, 박병구 할아버지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전 또 안 여쭤볼 수가 없죠.
의사 선생님도 이런 질문 많이 받아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면 먹어도 되느냐? 밀가루 음식이 괜찮은 음식이냐?" 이런 질문보단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에게 안 맞는 음식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런 음식을 안 먹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네요. 그렇다면 할아버지에겐 라면이 맞는 음식인걸까요? (엥? 진짜로?)
● 연세대비 건강 양호…"할아버지는 목양체질"
할아버지는 '소고기라면' 이후 '해피라면' 그 이후 '안성탕면'을 드셨는데요. 세 가지 라면의 공통점이 소고기, 된장 베이스에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이란 겁니다. 밀가루와 고기, 콩은 흔히들 태음인이라고 하는 목양체질이나 목음체질에게 적합한 음식들인데요. 할아버지가 목양체질이었던 거죠. 할아버지가 라면 중에서도 특히 안성탕면만 좋아하셨던 이유가 있었네요.
안성탕면은 장터국밥을 모티브로 개발한 제품이래요. 그래서 된장을 어떻게 조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하는데요. 생된장을 쓰기보단 된장을 한 번 볶는다거나 가열을 해서 조금 더 구수하고 진하게 맛을 내는 공정을 따로 했다고 합니다. 된장으로 맛을 낸 국물이 박 할아버지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던 이유였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선 "마흔 다섯 살부터 라면 먹기 시작했는데 여태껏 라면"이라며 "이제 죽을 때가 됐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귀도 안 들리고, 유일한 영양공급원인 '라면'만 드시며 사시는 게 힘드신 걸까요?
'어서 죽어야지'를 되뇌는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십니다. "생전 눈물을 안 흘린다"는 할머니 말씀과는 달리 할아버지 눈에도 눈물이 맺히네요. 서로 의지하며 견뎌낸 시간들이 떠올랐던 거 같습니다.
48년째 삼시세끼 라면만 드시는 게 가능할까란 맘에 너무 가볍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뵌 게 아닌지 죄송스런 마음과 괜스레 찡한 마음이 들었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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