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중앙은행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거래를 승인하는 초안을 29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지난해 4월 국내 통화·외환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면서 전면 금지했던 가상화폐 거래를 승인하면서 이란이 미국의 경제·금융 제재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가상화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중앙은행이 발표한 가상화폐 승인안은 초안인 만큼 정책이 구체화하진 않았지만 크게 가상화폐의 공개(ICO), 거래, 전자지갑, 채굴 등 4개 분야에서 가상화폐를 합법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가상통화 거래가 합법화되면 이를 보유한 사람은 이란 내 공식 환전소나 지정된 은행에서 이란 리알화로 교환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가상화폐를 이란 내에서 지불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했다.
이란중앙은행은 또 채굴이 허용되지 않는 `국가 가상화폐`를 발행하기로 하고 현재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가 발행하는 가상화폐는 베네수엘라가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아울러 이란의 인근 국가와 거래하는 `역내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란중앙은행이 가상화폐 금지령을 해제하려는 이유는 지난해 미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 제재를 복원했기 때문이다.
이 제재로 이란과 금융거래가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자 교역 대금을 거래처와 직접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막혔다.
이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가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란 기업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이 동의하기만 하면 기술적으로는 가상화폐로 물품 대금을 결제할 수 있다.
대이란 제재를 총괄하는 미국 재무부도 이를 우려해 지난해 11월 이란과 연관된 비트코인 거래에 가담한 이란인 2명과 이들이 보유한 전자지갑 계정을 제재 대상에 올려 거래를 막았다.
이들 이란인은 미국의 개인과 회사를 상대로 랜섬웨어를 사용해 60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뜯어낸 이란인 해커 2명(지난해 11월 미 법원에 기소)을 도와 이란 리알화로 바꾸는 데 가담했다.
미 재무부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이란 등 다른 `불량 정권`이 가상화폐를 악용하는 행위를 공격적으로 추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이 제재한 이들 이란인 2명은 익명 계정을 이용해 가상화폐 거래에 아무런 문제 없이 복귀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전통적인 금융 거래와 달리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기엔 역부족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가상화폐와 실물 화폐 간 환율 변동이 심하고, 이란의 경우 금융 거래뿐 아니라 물류도 제재 대상이어서 실제 물품 교역에서 달러나 유로화를 대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