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면 누구나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등교하지 않아도 되고, 방학 숙제와 체험학습을 핑계로 친구들과 동네방네 뛰어놀아도 잘했다며 칭찬받을 수 있었던 때. 방학은 이름 자체만으로도 해방이었으며 기다림이었고, 미소가 절로 지어질 만큼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아이일 때는 즐겁고 설렜던 방학이 시간이 흘러 부모가 된 지금, 여러 가지 이유로 반갑지 않은 존재가 됐다.
- 각종 아동 범죄와 환경 문제로 불안해진 방학
얼마 전 유치원생인 자녀를 두고 있는 한 연예인이 자신의 SNS를 통해 ‘미세먼지’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등원 전이나 주말 아침, 잠에서 깬 아이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오늘도 빨간색이야?”, “또 도깨비야?”, “그럼 놀이터 못 가?”라는 말이었다고 설명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 것. 아이가 말하는 빨간색과 뿔이 달린 악마 모양 캐릭터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속 미세먼지 ‘나쁨 단계’를 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는 방학 중에 아이들을 밖으로 맘껏 내보낼 수도 없다. 성인들이야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자각하고 있기에 외출 시마다 미세먼지 마스크를 자발적으로 착용하지만, 환경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경우 미세먼지 마스크 착용은 답답하고 불편한 물건일 뿐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호흡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기 오염 문제와 더불어 방학을 아이들끼리 보내라 내보내기엔 안심할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심심치 않게 뉴스 사회면에 노출되는 각종 흉악 아동 범죄다. 마음 맞는 친구와 몇 가지 놀이 도구만 있어도 즐겁게 놀 수 있었던 부모의 어린 시절과 달리 방학이 되어도 아이들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게 된 이유다.
이처럼 사회, 환경 문제로 인해 방학의 참 의미가 축소된 만큼 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친구들과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이야말로 난감한 문제다. 왜일까?
- 부족한 돌봄 교실·일부에만 주어지는 혜택…‘방학 육아’ 사각지대
과거에 비해 결혼과 출산 후에도 직장 생활을 하는 워킹맘들이 많아졌다. 덕분에 우먼 파워가 상승했으며, 가계비에 대한 부담도 다소 줄었지만, 동시에 고민해볼 문제가 증가했다. 맞벌이로 인해 부모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방학이면 아이 혼자 방치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경제력이 있는 워킹맘들은 방학 동안 아이를 각종 ‘캠프’에 보내곤 한다. ‘영어캠프’ 등을 통해 학습 효과도 누릴 수 있으며 부모와 같이 있지 않아도 아이들 나름의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급이 넉넉지 않거나 비싼 비용 탓에 이용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은 실정이다. 워킹맘뿐 아니라 전업맘 모두에게 아이들 방학은 또 다른 육아 문제가 되었다.
일부 기업에서는 방학을 맞아 다양한 자녀 체험학습과 캠프 등의 프로그램을 개설해 부모들의 고충을 덜어주기도 한다. 웅진플레이도시는 이번 겨울방학을 맞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워터파크&스파상떼’, ‘뽀로로 플레이파크’ 등의 테마공간을 마련했다. 안랩은 임직원 자녀를 초청해 ‘SW 코딩 교육 캠프’를 진행한다고 밝혔으며, KT그룹 또한 임직원 자녀를 대상으로 ‘여름방학 KBN 체험학습’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러한 방학 문제에 대해 육아교육전문가이자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대표 임영주 박사는 “아이들이 밖에서 마음껏 놀다가 해가 저물면 들어오는 자유롭고 즐거운 방학은 사라지고, 걱정되는 방학이 됐다”며 “부모 입장에서는 방학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불편한 시간이 되어버린 게 현실이다. 캠프라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있거나 대기업에 다녀 사내 복지를 누릴 수 있는 부모, 부모님(아이들의 조부모)께 부탁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닌 경우 등은 어떻게 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임 박사는 “현재는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극히 제한적이다. 아이의 방학을 부모에게만 책임지도록 맡겨서는 안 된다. 학교와 사회가 이 부분에 대한 것을 함께 고민하고 아이가 방치되는 방학이 되지 않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전업맘·육아 휴직자, 시간 주어졌지만 어떻게 보내야 할지…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육아 휴직을 통해 아이와 방학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지만,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고충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때 특별한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쉬워진다. 아이들은 그저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시간을 함께하는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비싼 비용을 들이는 방학 이벤트보다 아이와 의논한 소소한 이벤트가 더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임영주 박사는 “아이 스스로 직접 방학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지도하되 저학년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현실성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아지고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학업에 대한 계획을 세울 경우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선행 학습보다는 한 학기, 한 학년 교육 내용을 복습하며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정부기관이나 공신력 있는 기관 등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 참가하는 것도 유익하다. 물론 학업에 직접적 도움을 주는 계획이 아니어도 좋다. 학기 중에 해보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이나 평소 부모님과 하고 싶었던 것, 각종 체험 등 다양한 계획을 세울수록 알찬 방학이 될 것이다.
다수의 육아 교육서를 저술한 임영주 박사는 방학이라는 기간을 통해 아이의 독서 습관을 길러줄 것을 당부했다. 임 박사는 “방학의 참 의미는 글자 그대로 학교 수업으로부터 놓여나는 방학(放學)이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새 학기 또는 1년이 좌우될 수 있다”며 “독서로 아이들의 창의력과 환경·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다면 또 다른 ‘배움’을 선사하는 방학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