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파견하는 예술단의 방남 경로를 연달아 바꾸면서도 변경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애초 북한이 140여명의 삼지연관현악단으로 구성된 예술단의 방남 경로로 제시했던 것은 판문점이다.
지난달 15일 열린 남북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측이 우리측에 이같이 요청한 것이다.
그러자 북한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해 대규모 예술단을 내려보내는 모습을 연출해 파견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정부도 유엔사와의 협의를 거쳐 최종결정을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달 23일 남측에 보낸 통지문에서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꿨다. 예술단이 2월 8일 강릉아트센터와 11일 서울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하겠다고 통보하면서 6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이동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북한은 당시 통지문에서 판문점에서 경의선 육로로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후에도 정부는 북한의 변경 이유를 파악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북한은 예술단 본진 방남일을 이틀 앞둔 4일 또다시 방남 경로를 바꾸겠다고 알려왔다. 이 소식은 다음날인 5일에야 국내 언론에 공개됐다.
예술단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응원단이 타고 왔던 만경봉 92호(이하 만경봉호)를 타고 와 숙식 장소로도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번엔 "강릉 공연 기간 동안 숙식의 편리를 위한 것"이라고 변경 이유를 알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경의선 육로로 방남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 불편 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예술단이 응원단과 함께 인제의 숙소를 사용할 경우 한 방을 여러 명이 써야 하고 공연장인 강릉까지 이동에 시간이 걸리는 점 등과 관련해서 북측이 불편함을 호소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방남 직전 예술단의 만경봉호 이용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 2010년 천안함 피격을 계기로 남북교역 등을 전면 금지하고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을 불허한 5·24조치의 완화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의 여러 통로를 한꺼번에 열면서 만경봉호를 보내 제재 완화가 가능한지 탐색해 보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만경봉호가 미국이나 유엔의 직접적 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국내에 입항하려면 5·24조치의 예외가 인정돼야 하는 만큼 북한이 한미 공조의 분열을 의도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5·24조치에 연관된 문제라 해도 한미간 조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숱한 제재대상을 놔두고 고위급대표단 단장으로 우리나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 아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택한 점으로 볼 때 굳이 만경봉호를 동원해 한미 공조 이완을 노렸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북측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측과의 합의 사항을 두고 입장을 바꾼 것은 여러 차례 있었다.
북한은 당초 4일 예정된 금강산 남북합동문화행사를 지난달 29일 밤 전격 취소했다. 북한은 당시 우리측 언론이 평창올림픽과 관련한 북측의 진정어린 조치들을 모독하는 여론을 확산시키고 북한 내부의 경축행사까지 시비해 취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또 지난달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이끄는 사전점검단 방남을 돌연 `중지`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했는데 그때는 별다른 이유를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