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전자제품 유통업체 베스트바이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팔린
LG전자 세탁기는 소비자가격이 629달러다. 이 세탁기에 대한 525개의 리뷰가 있고 평균 평점은 5점 만점에 4.5점이다. 호의적인 리뷰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세탁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의 `Cleaning Quality`다.
한국산 세탁기에 덤핑 의혹을 제기한 미국의 업체 월풀의 세탁기도 같은 사이트에서 팔린다. 629달러의 LG전자 세탁기와 같은 사양(프론트 로드 타입, 세탁용량 4.5큐빅피트) 세탁기의 소비자가격은 599달러다. 덤핑은 원가를 무시하고 싼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는 불공정행위를 뜻하는데, 정작 덤핑 의혹을 제기한 회사가 더 싼 값에 세탁기를 내놓고 있다.
LG전자 세탁기는 베스트바이 온라인에 35개 제품이 올라와 있고 이 가운데 32개 제품이 소비자평점 4.5 이상을 받았다. 월풀 세탁기는 21개 제품이 등록되어 있으며 그 중 11개가 평점 4.5를 넘지 못했다. 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장 많이 팔린 월풀 세탁기는 399달러짜리다. 적어도 이 곳을 이용하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한국산 세탁기는 가격에 비해 품질이 우수할지언정 싼 맛에 쓰는 제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슬프게도 미국 정부는 아직 베스트바이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 않은 것 같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이 한때 좋은 일자리를 창출했던 미국의 산업을 파괴하며 세탁기를 미국에 덤핑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사실에 근거했다기보다 정치에 근거를 둔 발언으로 읽힌다. 그는 한국산 세탁기도, 미국산 세탁기도 직접 돌려보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미국은 자국 기업이 제기한 세탁기 덤핑 의혹을 받아들인 상황이고, 일정 대수를 넘어선 한국산 세탁기 수입물량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다음달 3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종 서명을 하게 되면 ‘세이프가드’로 불리는 긴급수입제한조치가 발동된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LG전자 경영진이 이례적으로 입을 열었다.
에어컨 신제품 발표회 이후 마련된 질의응답 시간에서 송대현 LG전자 사장(H&A 사업본부장)은 에어컨 대신 세탁기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세이프가드 대응방안이 있냐는 것이었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 경영진은 제품 외의 질문에는 말을 아끼지만 송 사장은 결심한 듯 발언했다.
첫째. LG전자는 프리미엄 제품을 수출하고 있어 덤핑의 여지가 없다. 둘째, 실제로도 덤핑은 하고 있지 않지만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이슈가 된 것으로 보고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한 시나리오를 갖고 대비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어진 송 사장의 코멘트가 여운을 남겼다. “어떤 상황이 생겨도 거래선을 포함한 고객은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지킨다`는 대상에는 거래선 뿐 아니라 미국 현지의 소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형식을 띄었지만, 송대현 사장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준비된 반박으로 읽혔다. 미국 대통령보다 LG전자 사장이 더 이치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