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공석인 헌법재판관 한 자리에 유남석 광주고등법원장을 지명한 것은 논란이 되고 있는 `헌재 권한대행 체제` 문제에 대해 `단계적 해법`을 시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야권이 헌재소장 대행체제에 대한 정치적 의구심을 드러내며 헌재 소장을 즉시 지명하라는 압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일차적으로 `9인체제`를 정비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의 확대를 막고 헌법 절차에 따라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뜻을 내보였다는 평가다.
참모들로부터 소장 인선을 서둘러 달라는 이틀 전 헌법재판관 8명의 입장과 그에 따른 정치권의 반응을 보고받은 이날 오전만 해도 문 대통령은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후 들어서 유 후보자의 지명 사실을 발표한 것은 더이상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날 지명 발표가 불완전한 8인 재판관 체제를 완전한 9인 체제로 정비하려는 그간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린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헌법재판관 인사 절차를 차분하게 절차대로 하고 있다고 설명해 왔다"며 "오늘 발표하기로 결정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동시에 청와대의 이날 결정은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단계적 수순 밟기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헌법재판관 공백 문제를 먼저 해소하고 헌재소장 임기 문제와 관련한 국회의 입법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소장 지명을 하겠다는 의미다.
청와대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장 문제는 `넥스트 트랙`"이라면서 "오늘 발표한 유 후보자를 포함해 9인의 완전체를 이루고 나면 아홉 분의 재판관 중 헌재소장 후보를 머지않아 지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가 헌재소장 대행체제와 관련해 야권이 내놓는 정치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절차대로 진행돼온 것이라는 점을 알리는 한편, 헌재소장 공백 상태를 해결하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국회에 입법 미비를 해소할 것을 촉구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입법미비가 해결되지 않아도 헌재소장 지명 절차를 밟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국회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면서 "저희는 계획대로, 절차대로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국회에서 헌법재판소법을 언제 개정하느냐가 헌재소장 공백 상태를 해소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전망이다.
헌재소장 임기를 임명받은 날을 기준으로 하는 내용을 담아 국회에 계류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 문 대통령은 순조롭게 아홉 명의 재판관 중 한 명을 헌재소장으로 지명하면 된다.
만약 문 대통령이 새로운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유 후보자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하면 유 후보자는 두 번의 청문회를 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이 임명될 당시에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전제로 한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치렀지만 위헌 소지가 불거졌을뿐더러 청와대도 유 후보자 지명이 헌재소장 임명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물론 여야가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도 해결하고자 한다면 청문회 횟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야당이 청와대를 향해 헌재소장을 먼저 임명하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을 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저희는 국회입법을 전제로 헌법재판관을 추가로 임명하고 소장을 새로 지명하겠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 법안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헌재 소장을 지명할 확률이 있다는 이야기다. 청와대로서는 헌재소장 임기 논란을 해결하지 못한 책임이 야당에 있다고 규정하면서 정치적 이해를 고려한 결단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