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문을 연 국내 새활용(Upcycling·자원에 디자인 요소를 더해 가치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 산업의 거점 서울새활용플라자 3층의 한 스튜디오. 넓지는 않지만 깔끔한 공간 벽면에 알록달록한 파우치(작은 주머니)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가죽 같지는 않은데, `반질반질` 윤이 나는 소재가 어딘가 모르게 낯설지는 않다. 가까이 가보니 이들은 모두 우유팩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이다.
3일 서울디자인재단에 따르면 이곳은 우유팩으로 파우치와 카드홀더 등을 만드는 새활용 공방 `밀키프로젝트`(Milky Project)다.
서울 시내 지자체와 축산업계의 지원을 받아 우유팩을 모은 뒤, 잘 씻고 다듬어 디자인 상품으로 `변신`시키는 것이 이곳의 일이다. 올해 3월부터는 이곳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한 국내 온라인 사이트에 지금까지 제품 수천 점을 납품하는 성과를 거뒀다.
밀키프로젝트는 일본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도쿄의 한 벤처기업에서 일하던 김수민(36·여)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일본의 한 마트 우유 코너를 들렀다가 각양각색의 유제품을 보고 아이디어가 번득였다고 한다.
김씨는 "우유팩은 색깔, 캐릭터, 폰트가 다양하고 다른 나라에 가져가면 이국적인 느낌이 들어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며 "직접 `뚝딱뚝딱` 파우치를 만들어 6개월가량 보완 작업을 거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2015년 일본 후쿠오카시의 지원으로 현지 장애인단체와 연계, 우유팩 수집→세척→가공 시스템을 갖춰나갔다. 환경에도 보탬이 되고, `착한 일자리`로 지역 사회에도 도움이 되자는 취지에서다.
김씨는 "사업을 하다 보니 `나는 한국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아이템으로 승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후쿠오카보다는 서울에서 사업을 펼칠 때 브랜드 가치가 더 커질 수 있으리라고 보고, 그해 말 귀국했다"고 말했다.
사업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을 묻자 `우유팩 수급`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구겨지거나 찢어진 우유팩은 상품성이 없어서 `상태`가 좋은 것만을 골라와야 하는데, 이 같은 경우는 100개 가운데 5∼6개에 그친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러 가지 우유팩 종류 중에 대중이 좋아하는 디자인은 정해져 있는데, 그 우유팩만 대량으로 구할 수도 없다는 점도 고민이다. 일반적인 제품이었다면 특정 디자인만 공장에서 찍어내면 되지만, 그 우유 제품 소비가 갑자기 늘어나지 않는 한 우유팩 수급을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씨는 "우유팩이 결국에는 종이다. 천이나 가죽과 달리, 만들 수 있는 제품의 형태가 제한적이다"며 "우유팩의 4개 면 가운데 성분 표시가 적힌 면을 빼고 메인 디자인이 자리한 2개 면을 사용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