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공무원 교육훈련을 담당하는 소방학교 교관으로 지내다 전임 교수직을 맡게 되자 스트레스와 부담감에 괴로워하다 자살한 소방관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일반인이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스트레스라도 자살한 사람의 개별적인 신체·심리 상황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자살한 소방관 K씨의 부인 유모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전임교수 전보 직후 자살을 시도한 점에 비춰보면 업무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인다"며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94년 임용된 K씨는 일반 소방업무와 소방학교 교관업무를 번갈아 가며 담당했다. 현장 소방관으로 6년 일했지만, 소방학교 교관은 14년 2개월 맡을 정도로 교육 분야에 전문성을 보였다.
다만 사망 직전에는 예전 근무한 소방학교에서 2013년 7월 떠났지만, 이듬해 1월 복귀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거절했다. 해당 학교의 여건이 열악하고 추가 업무가 많은 점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2014년 7월 다시 요청을 받고선 결국 승낙했다.
이후 그에게는 다른 교관의 평균 강의시간인 327시간보다 훨씬 많은 540시간이 배정됐다. 그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월평균 초과근무가 58시간에 달했고, 월평균 휴일근무는 25시간으로 파악됐다.
그러던 중 K씨는 2015년 1월 교관에서 전임교수를 맡게 됐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교관이 아닌 교수로 일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고 발령 직후 자신의 차에서 착화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구조된 후 20일 동안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았지만, 퇴원 직후 집에서 목을 매 결국 목숨을 끊었다.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이 강하고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인 K씨가 과도한 업무량과 부담감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부인이 유족보상금을 청구했지만, 공단이 `전임교수 발령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 아니다`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 2심은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망 당시의 상황을 면밀히 따져보지 않았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