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가 예사롭지 않다. 갸름한 얼굴이 얼핏 스칼렛 요한슨을 닮은 듯한, 이국적인 여성 한 명이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 왜 자이언트 핑크인가?
`쎈 언니들`은 다 모였다는 Mnet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3>의 우승자 자이언트 핑크의 인터뷰인 만큼 세게 시작해보고 싶었다. "더 이뻐졌어요. 얼굴에 뭐라도 한 건가요?" "하긴 뭘 해요? (웃음)"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받아치는 모습이, 브라운관 속에서 봐왔던 털털함 그 자체의 자이언트 핑크다. 요즘 자이언트 핑크의 얼굴이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보인다. 본격적으로 예능 활동에 시동을 건 것이냐는 질문에 "회사에서 진행하는 스케줄들이죠 뭐. 그 중심에 음악 활동이 있어요."라며 가수로서 본업에 충실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름이 독특하고 예쁘다. "TBNY 멤버 톱밥 씨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크다는 뜻의 `자이언트(Giant)`와 여성스러운 색인 `핑크(Pink)`를 합친 이름이에요. 여자 치고 키가 크기도 하고. 원래 좋아하는 색은 검은색인데, 검은색이 일상화된 힙합씬에서 검은색보다는 좀 더 튀는 핑크가 낫다 싶었죠." 간혹, 네티즌들의 수위 높은 농담 대상이 되었던 랩 네임 탄생 비화. 이름에 얽힌 오해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다.
톱밥은 한때 자이언트 핑크의 랩 트레이너였다. "니키 미나즈의 `Beez In The Trap`이라는 곡을 한 달 내내 붙잡고 맹연습했던 적이 있었어요. 정점인 훅 부분이 소화가 안 돼서 속상해 울고 있었는데, 가라앉은 기분과 톤으로 다시 해보라고 격려해줬어요. 다른 마음으로, 다른 느낌으로 시도해보니 어려웠던 부분이 잘 불렸어요." 이 한 장면에서 자이언트 핑크의 끈덕진 열정이 결국 그가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3>을 제패하게 이끌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어느새 무대 위의 거인이 된, 자이언트 핑크. 그리고 그를 알아봤던 톱밥의 선견지명은 한치의 틀림도 없었다.
#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털털한 애주가
털털하고 솔직한 자이언트 핑크의 입담에, 우리는 어느새 느슨하게 긴장을 푼 채 대화를 이어갔다. "서울 온 지가 어느덧 5년 정도 됐어요. 사투리를 고칠 만도 한데, 그게 잘 안돼요. 한동안 억지로 서울 말투 흉내를 내봤는데 어색해서 다시 사투리를 쓰고 있죠. 요즘은 언니랑 같이 사는데, 사투리를 완전히 고쳤던 언니가 저 때문에 다시 사투리가 튀어나온다며 핀잔을 주고 있어요" 사투리라는 가벼운 소재에 대한 질문에도 자신의 일상사를 술술 잘 털어놓는다.
어떻게 여가를 보내냐는 질문에 "혼밥, 혼술! 아, 방콕도 잘해요."라며 웃어 보이는 자이언트 핑크는 확실히 트렌드를 알고 있다. 단골 가게를 추천해달라고 하자 "이태원 `이즈비`라는 양식주점에 자주 가요. 화려하지도 않고 메뉴도 단출해요. 테이블 배치도 혼자 술 마시기 딱 좋고. 특히 술이 종류별로 있어요." 자이언트 핑크는 특히, 증류주 원액으로 만든 희석식 소주인 한라산 소주를 추천했다. "화끈한데 부드럽고. 저 체질에 잘 맞더라고요." 향이 덜 하지만 20도 이상의 고도수 소주답게 확실히 센 술이다. "저는 술로 스트레스를 다 풀어버려요. 다음날 속 쓰리고, 머리 아프다가 아무 생각이 안 날 때 즈음 `아 나 살았구나`라고 느껴요. 기분도 좋아지고 고민했던 일이 별거 아닌 게 돼버린달까."라고 하더니, "아니 잠깐. 나만 그런가요?"라고 되묻는 솔직하고 순박한 그의 모습에서 투명한 백주의 향이 스친다.
# 힙합이라는 서바이벌을 지나며 : 무명(無名)과 유명(有名) 사이
쇼미더머니를 바라보는 래퍼의 시각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진짜 랩 잘하는 래퍼는 많아요. 특히 리듬파워 멤버 `행주`의 무대는 진짜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무대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나 역시 리듬파워의 무대를 보면서 `좋은 프로듀서를 만났으면`하고 응원했던 때가 떠올랐다. 협업해보고 싶은 래퍼로는 DPR LIVE, 페노메코 두 아티스트를 꼽았다. 거칠고 개성 뚜렷한 신예 래퍼들. 두 래퍼의 이름만으로도 그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쇼미더머니5>,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3> 등 그가 출연했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못지않게 인기를 끌었다. 알아보는 사람이 생겨, 생활이 불편했던 적은 없을까. "술이 만취한 분들이 가끔 명령조로 `오~ 자핑! 사진 한번 찍자`라며 다가오세요. 그럴 때는 일부러 더 친절하게 대하고, 빨리 사진만 찍고 빠져나와요. 좀 가식적이기는 해도." 마냥 털털해 보이는 그에게도 웃어넘길 수 없는 상황들은 찾아온다.
"이름이 알려진 후에도 원래 친했던 친구들, 지인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요.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락을 놓칠 때가 종종 생기는데, 나중에라도 꼭 회신하는 편이에요. 근데 그사이에 `뜨더니 변했다` `유명해지더니 연락도 안 된다`라는 헛소문들이 떠돌아요" 믿었던 이들이기에 더욱 서운하고 화가 난다는 그. 연예인을 업으로 하는 한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지점이었다.
# 윤종신, 케이준 그리고 미스틱 식구들
빠질 수 없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식구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자이언트 핑크에게 윤종신이란 사람은 소속사 대표 프로듀서이기 전에 존경하는 선배다. "실력파이면서도 노력하는 음악가. 굉장히 섬세한 아티스트죠. 제가 가장 닮고 싶은 가수이자 연예인이에요" SM엔터테인먼트와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이야기를 담은 Mnet 음악 예능프로그램 <눈덩이 프로젝트>에 출연하는 등 함께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동료 가수 `케이준`. 자이언트 핑크에게 케이준이란? "최고의 지원군. 가끔 서로 의견이 안 맞아 싸울 때도 간혹 있지만, 든든해서 가장 많이 기대게 되는 사람이에요. 보이지 않는 신뢰라는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케이준을 실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나로서도 자이언트 핑크가 말하는 그 든든함을 알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의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를 뜻하는 신조어)`라도 된 느낌으로 수다를 떨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되어 있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자신의 음악을 매달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고. "자이언트 핑크, 아직도 음악 활동해?" "자이언트 핑크 음악이 또 나왔어?"라는 말을 듣는 일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매력적인 목소리와 털털한 성격이 화끈한 백주를 연상케 하는 자이언트 핑크. 그의 앞날에 진하고 찬란한 분홍색 길만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진행 PK헤만(가수&래퍼) | 기획·편집 권영림 (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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