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출신으로 남북한을 비롯해 동아시아 경제사회 문제에 정통한 뤼디거 프랑크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 교수가 북한 방문을 통해 현장의 사회경제 변화를 관찰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원, 촉진하는 방식이 북한 문제의 해결이라는 지론을 거듭 주장했다.
다음은 프랑크 교수가 전한 북한 현지의 변화상이다.
▲느슨한 입국
순안공항에서 휴대전화를 제출하긴 했으나 이전 방문 때와 달리, 휴대전화 잠금 해제나 단말기 식별번호를 요구받지 않았다. 휴대전화나 태블릿 파일 내용도 검색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방북 사례 중 가장 느슨한 입국 절차를 거친 셈이다.
▲평양 차량 홀짝제 운행
북한의 차량 번호판 색깔이 군용 차량은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바뀌었다, 북한을 방문할 때 다른 차량 번호판은 몰라도 군용 차량 번호판 특징은 알아두는 게 좋다. 멋모르고 사진을 찍었다간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평양에선 차량이 홀짝제로 운행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엄격히 시행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당국이 홀짝제를 시행키로 한 사실 자체는 평양의 교통량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창업 업종: 세차
주유소가 급증한 게 눈에 띈 것에 더해 세차장도 10여 곳 발견했다. 일부는 정식으로 `차세척`이라는 간판까지 내걸었고 일부는 가설 세차장이었다.
세차장이 생긴 것이 차를 깨끗하게 몰고 싶어하는 개인 운전자들의 수요 때문인지 당국이 수도 평양 미화 필요성 때문인지 알기 어렵지만, 어느 경우든 경제학적으로 보면 서비스 분야의 공급 측면이 수요에 신속하게 부응한 셈이다. 이는 시장 경제에선 당연한 일이나, 분명히 북한의 국가사회주의 체제에선 대체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꿩 대신 닭: 전기 자전거
최근 북한에서 차량이 크게 늘어나긴 했으나 아직은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며, 휴대폰 등록 숫자로 추정되는 약 300만 명의
신흥 중산층에도 그렇다. 승용차를 보유하려면 주유 부담도 크다.
지난 2014년 라선 경제특구를 방문했을 때 중국과 인접한 특성 등으로 인해 전기 자전거가 개인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봤었다. 이제는 북한 전역, 특히 평양으로 전기 자전거가 보급되고 있다. 평양의 경우 얼추 자전거 20대 중 1대꼴로 커다란 배터리를 달았다.
평양 광복지구 상업지구에서 전기 자전거에 북한 돈으로 270만 원(미화 340달러, 한국 돈 38만 원가량)의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을 봤다. 휴대폰 2~3대 값으로 비싸긴 하지만 중산층이 넘볼 수 없는 가격은 아니다.
▲교통 경찰관용 신형 오토바이
푸른색 제복의 `교통안전`(교통경찰) 옆에 위장 무늬로 도색한 신형 오토바이가 지급됐다. 과거처럼 `보통강` 상표이긴 하지만 외관은 1950년대 형을 벗어나 1990년대 형쯤은 돼 보였다.
▲자전거 택시
내가 방문한 2월은 아직 겨울인데도 가두 판매점은 사과 외에도 일부에선 바나나와 오렌지도 팔고 있었다. 거리 모퉁이마다 펑크난 자전거 타이어를 수리하거나 바람을 넣어주는 간이 수리점이 있고, 하다못해 가스라이터에 가스를 넣어주고 푼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는 자전거, 전기 자전거, 전기 스쿠터를 이용한 비공식 수송 시장도 평양에 만들어 냈다. 시장 등 고객들이 몰리는 장소 입구에 남자들이 자전거나 스쿠터를 세워두고 기다리다가 장을 본 여성과 짧은 가격 흥정을 통해 돈을 건네받고는 장바구니를 든 여성을 뒷자리에 태워 목적지에 내려주는 방식이다.
▲스포츠 복권
북한 전역에서 `체육추첨`이라는 간판을 단 푸른색 가두 매점을 볼 수 있다. 북한에서도 복권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스포츠 복권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 여윳돈이 있으며 물질적 욕구가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질적 욕구는 필연적으로 이념을 희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