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이 청와대 정책실장이 총 재산 약 93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청와대 참모 중 가장 많은 재산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집안은 전남의 명문가로 유명하다. 장씨집안은 구한말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일대 염전과 논밭을 가진 만석꾼 부호였다. 1915년쯤 육지로 나와 광주에 자리를 잡았다. 장씨 집안은 3대에 걸쳐 사회 지도층을 상당수 배출했다. 1세대는 독립운동가, 2세대는 정치인과 관료·의사, 3세대는 학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장하성 교수의 증조할아버지 장진섭씨는 일찍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식들을 외지로 유학 보냈다. 장남 장병준씨는 일본 니혼대 법과를 나왔고, 장재식 전 장관의 아버지인 둘째 장병상씨는 서울 보성전문을 거쳐 일본 메이지대를 졸업했다. 셋째 장홍재씨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해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막내 장홍염씨는 서울 휘문학교와 중국 베이징국민대학을 다녔다.
장홍재씨가 광주학생운동에 앞장섰던 것처럼 다른 형제들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장병준씨는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 측근으로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이었고, 장홍염씨는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나와 독립군에 몸담았다. 장홍염씨는 광복 후 반민특위 검사와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다. 장병상씨는 국내에서 철도공무원을 했지만 형과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다 수차례 일본 경찰에 끌려다니기도 했다.
할아버지 대의 독립운동 이력에 대해 장하성 정책실장 “굳이 제 집안이 어떻다고 얘기하는 게 우습다.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 했다가 패가망신한 분이 많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말 훌륭한 분이 많다”고 말했다.
또 장하성 정책실장은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자식 자랑, 돈 자랑, 집안 자랑하는 사람이다. (집안은) 내 자부심이지, 자랑거리는 아니다”라면서 집안 얘기 꺼내는 것을 꺼렸다.
사진=KBS뉴스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