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국민들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정진영은 영화 `판도라`에서 재난 현장 속 누구보다 투철한 희생정신과 책임감을 지닌 발전소장 평섭 역할을 맡았다. 평섭은 노후화된 원전에 대한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빌미로 좌천되지만,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달려와 구조작업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현 시국과 맞닿아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리더를 연기한 정진영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 개봉 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정진영과 이야기를 나눴다.
Q. `판도라`는 현 시국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은데.A. 상상으로 고안한 우리 영화가 현실이 되어 버려 당혹스럽다. 영화 개봉 날짜를 정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시국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시국을 이용해 영화를 홍보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개봉 후 입소문을 타는 것 같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게 아닌가 싶다. 설마 했던 일들이 일어나니까 어쩌면 영화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Q. 영화가 너무 현실적이면 관객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특히 원전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더 그렇지 않나?A. 영화에서 사고 후 컨트롤타워 없이 내팽개쳐진 사람들의 절망적인 모습이 있지만 다수를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우리 영화는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지 관객들을 겁주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수습 불가한 원전재난을 다룬 만큼 사고가 나기 전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고, 대응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미 깊은 영화다. 실제로 사고가 나기 전에 개봉한 것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Q. 촬영 현장이 고됐다고 들었다.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현장이었나.A.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감독, 제작사 모두 이 영화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과연 순조롭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작품이다. 영화가 작은 이슈를 전하는 내용은 아니지 않나. 규모가 커서 막대한 자본도 필요했는데 과연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만큼 자금이 조달될까 걱정이 됐을 거다. 다행히
NEW에서 투자해줘서 감사하다.
Q. `판도라`는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 이래 4년 만에 세상의 빛을 봤다. 일면에서 정치적인 외압설도 흘러나왔는데 개봉이 늦춰지는 것이 배우로서 불안하지는 않았는지.A. 우선 CG 등 후반 작업이 많았다. 손이 많이 가고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라 시간이 오래 걸렸지 외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정부가 원전의 수를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고,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터부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서 모종의 방해가 있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에서 촬영이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 투자 펀드를 조성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외압이나 방해를 받은 일은 없다.
Q. 정진영이 생각하는 `판도라`의 관전 포인트는 어디에 있나.A. 영화에 발전소 식구들, 마을 사람들, 청와대 등 세 파트가 나오는데, 청와대 사람들을 찍을 때만 해도 가공의 상황을 설정해 둔 것이다. 재난 컨트롤타워 부재는 당시에도 현실이었기 때문에 거리감을 두고 그린 건데 오히려 관객들이 그걸 더 집중해서 보더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국민이 정치적 학습을 하면서 그 부분이 더 크게 보이는 거다. 그래도 우리 영화는 재난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어떻게 극복하려 노력하는 지가 그려져 있다. 그들의 헌신이 이 영화가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포인트고, 그 포인트가 잘 전달돼야 한다.
(사진=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