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와 전통을 통해 축적된 ‘헤리티지’
즉 ‘유산’은 단지 시간이 흐르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세월의 가치를 엄중하게 지켜가면서 시대와 호흡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었을 때 진정한 헤리티지로 거듭날 수 있다.
오래됐지만 낡지 않았으며, 새롭다고 해도 깊이가 있는 것
그 신구의 긴장감 넘치는 대립과 화합을 통해 헤리티지는 비로소 생동감 넘치는 감성을 획득하게 된다.
오래된 미래가 제시하는 기분 좋은 여정에 지금 동참하시겠어요?
현대 자동차 그룹의 <모터스라인>에서는 감각의 표면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묵직한 인상을 전하는 젊은 헤리티지를 주목하여 민휘아트주얼리 김민휘, 정재인 작가의 인터뷰를 수록했다.
이번 인터뷰는 삼성그룹사보 <삼성앤유>, 아모레퍼시픽, IBK 퇴직설계연구소, 현대자동차그룹 <모터스라인> 등을 기획하고 제작한 이지연 기자 그리고, 잡지, 광고, 사보, 단행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현희 사진작가가 진행했다.
전통의 멋을 섬세하게 가다듬다.
서울 청담동에 자리한 민휘아트주얼리에 들어서자,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던 각종 장신구들과 인테리어 소품들이 즐비했다. 마치 잘 정리된 미술관 같았다. 드라마 <가면> 속에 등장했던 조각구름 모티브의 자개 작품과 액자가 전통의 품격과 현대의 세련미를 고스란히 담은 채 고고하게 빛나고 있었다.
장식장 안에서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4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전지현과 김수현을 이어주었던 은은한 옥빛의 수정죽절비녀가 숨 쉬고 있었으며, 그 곁에는 영화 <아가씨>에서 김민희의 상징과도 같았던 스피넬 귀걸이가 사파이어의 깊은 영롱함을 품고 도도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자개 액자는 우리나라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었는데요. 자개 조각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자투리 천을 모아 복을 깁는 마음으로 조각보를 만들었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떠올랐어요. 자개 조각을 일일이 자르고 붙여 지금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죠.”
정재인 디자이너는 작품을 구상하는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다. 이는 그녀가 작업 과정에서 만나는 스태프들과 민휘아트주얼리의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스타들을 대하는 방식과도 같다.
그녀는 나만 빛나려는 이기와 내 작품만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심을 앞세우지 않는다. 은은하게 빛나는 주얼리처럼 ‘상대를 빛나게 할 때 비로소 나의 존재가치가 더해진다’는 사실을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며 터득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제가 만든 의상에 어떤 액세서리를 더하느냐에 따라 옷의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학창 시절, 뉴욕대학교와 스탠포드 대학교로 연수를 가면서 주얼리에 대한 관심의 폭이 넓어졌고, 2013년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민휘아트주얼리의 이름으로 장신구를 디자인하면서 전통 문양이 가진 멋과 섬세함에 눈뜨게 되었어요.”
지난 11월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서도 고증에 입각한 현대적인 장신구들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12월에 방송되는 드라마 <화랑>과 내년 1월 시청자들과 만나는 <사임당, 빛의 일기>에도 두 사람의 작품이 함께한다.
이들의 필모그래피를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만큼 민휘아트주얼리는 수년간 많은 드라마와 영화 현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과거 의상팀이나 소품팀의 영역으로 구분됐던 장신구 파트가 전문성을 인정받고 고유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숨은 노력 덕분이다.
클래식의 품격, 현대에 알리다.
딸인 정재인 디자이너가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디자인의 영감을 얻는다면, 엄마인 김민휘 대표는 유물, 민화 등 전통 예술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발견한다. 기악과를 졸업하고 첼리스트를 활동했던 그녀는 평소 그림, 서예 등을 즐기며 예술을 곁에 두고 지냈다. 그러던 중에, 그녀에게 첼로를 배우던 제자로부터 ‘신라시대 유물을 재현한 귀걸이’를 선물 받으면서 전통 장신구의 아름다움에 매료됐고, 그 때부터 왕실 장신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에 한국 공예 디자인 문화 진흥원 CEO 과정을 수료하고 서울 산업 대학교 귀금속 공예 전문가 과정, 국민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주얼리 디자인과를 졸업하는 등 김민휘 대표는 쉼 없이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철저한 고증 위에 신라, 백제, 가야 시대의 유물들을 재해석한 시리즈들이 국내외 공모전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드라마 <선덕여왕> 등 사극에서 주요 장신구와 소품으로 등장했다.
지난 2011년 뉴욕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린 ‘조선의 왕, 뉴욕에 오다’라는 행사에서 조선시대 궁중 예복과 왕실 수라상을 모티브로 한 한복 위에 아름다운 장신구들을 더해 전통의 품격을 높였고, 지난 9월 뉴욕 카네기홀 대극장에서 공연한 우리나라 창작 오페라 <선비>의 장신구 디자인과 제작을 맡아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 전통의 멋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전통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예스럽다는 편견을 갖기 마련인데, 아름다운 전통 장식과 문양들을 현대적인 주얼리에 접목하면 이채로운 디자인이 탄생해요. 처음에는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하면 할수록 한국을 대표하는 주얼리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생겨요. 많은 대중과 셀러브리티들이 우리 작품에 관심과 사랑을 주시는 만큼 전통을 기반에 둔 다채로운 시도들을 통해 많은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존하는 터전을 마련하고 싶어요. 이런 생각은 파트너이자 든든한 조력자인 딸 재인이가 함께하면서 더 확고해질 수 있었어요.”
서로를 닮아가는 엄마와 딸
김민휘 대표는 “나는 MK주얼리로 활동을 했는데, 재인이가 활동을 하면서 민휘아트주얼리로 이름을 세웠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엄마의 이름을 찾아주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엄마가 그간 쌓아온 역사와 경험들을 이어가고 싶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얼리 브랜드를 보면서 전통과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이 부러웠거든요. 유물, 자연, 동화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엄마는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누구보다 잘 만드세요. 그건 저도 따라잡을 수 없는 엄마만의 고유한 영역 같아요. 반면,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고 실현하며 현대화하는 장점이 있어요. 엄마의 이름을 내건 민휘아트주얼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일이 앞으로 제 몫이라 생각해요.”
고운 자태만큼이나 바른 생각과 깊은 마음을 가진 정재인 디자이너를 보며 문득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제 딸이라서가 아니라 재인이는 디자인 감각도 뛰어나고 성실하고, 열정적이에요. 제가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업들을 맡고, 재인이가 한류 스타들의 장신구를 전담해서 우리 주얼리를 세계 시장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요. 서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지금처럼 조언을 아끼지 않을 거고요. 다만,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통 문양과 누금, 세선 같은 전통 세공 기법을 활용한 작업들을 이어가려고요. 그래야 비로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품 주얼리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며 확고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김민휘 대표와 정재인 디자이너. 그들은 전통의 멋과 가치를 현대에 되살리고 있다. 어쩌면 대를 이어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의 존재 그 자체가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접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