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검 특수부(임관혁 부장검사)는 30일 오후 7시께 뇌물수수, 알선수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현기환 전 정무수석의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현 전 수석에게 엘시티 사업과 관련한 알선을 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엘시티 시행사 실질 소유주인 이영복(66·구속기소) 회장으로부터 수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적용했다.
수억원대 금품에는 이 회장 계좌에서 현 전 수석 계좌로 넘어간 거액의 수표와 상품권, 골프와 유흥주점 접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두 사람 간의 수표 거래를 직무연관성과 대가성이 있는 부정한 돈으로 판단해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뇌물수수 혐의가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점을 고려하면, 검찰은 현 전 수석이 국회의원 때(2008년∼2012년) 혹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근무할 때(지난해 7월∼올해 6월) 엘시티 사업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나서 그 대가로 이 회장에게서 거액을 받았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현 전 수석에게 알선수재 혐의도 적용했다.
알선수재죄는 공무원의 직무에 관해 알선행위를 하고 그 대가로 금품 등을 받은 사람에게 적용된다.
공무원이 아닌 사람이 공무원처럼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에도 적용된 판례가 많다.
현 전 수석이 포스코건설을 엘시티 사업에 시공사로 참여하도록 하거나 엘시티 시행사가 1조7천8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받는 데 개입하고 금품을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또 현 전 수석이 18대 국회의원일 때 이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법에 규정된 방법 이외의 수법으로 돈을 받은 단서를 확보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현 전 수석을 소환해 12시간 동안 조사한 검찰이 추가 조사 없이 다음 날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현 전 수석의 혐의 입증에 필요한 물증과 정황 증거 등을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현 전 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엘시티 사업에 개입하지 않았고, 금품 로비도 받지 않았다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현 전 수석은 30일 오전 1시께 부산 부산진구 모 호텔 17층 객실에서 커터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그어 비교적 가벼운 상처가 났다.
이어 이날 오후 6시를 전후해 객실 안 욕실에서 같은 곳에 다시 자해해 길이 7㎝, 깊이 1㎝가량의 상처를 입었다.
이 때문에 현 전 수석은 손목 인대가 손상돼 수술을 받고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전 수석이 욕실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수행원이 오후 6시 30분께 문을 열고 들어가 피를 흘리고 있는 현 전 수석을 발견했다.
당시 욕실 바닥과 욕조에는 피가 흥건했다.
수행원은 곧바로 호텔 프런트에 전화했고, 지하 1층에 있던 간호사가 급히 17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누워 있는 현 전 수석을 발견해 지혈한 뒤 붕대를 감는 등 응급처치를 했다.
이때 현 전 수석은 의식이 있었으며 상태를 묻은 간호사의 질문에 정상적으로 대답했다.
현 전 수석은 이어 호텔 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현 전 수석은 29일 오후 11시 30분께 다른 사람 이름으로 이 호텔에 체크인했고, 애초 1박하기로 돼 있었지만 하루 더 투숙했다고 호텔 측은 설명했다.
현 전 수석은 29일 오전 10시 엘시티 비리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12시간 넘는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오후 10시께 검찰청 문을 나섰다.
이 일로 상당히 낙담한 현 전 수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 전 수석이 묵은 호텔 방 테이블에는 양주병과 맥주병이 다수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검찰은 애초 다음 달 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현 전 수석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할 계획이었지만, 현 전 수석의 자해로 수사일정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