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 문제를 놓고 금융감독원과 보험사들이 제대로 붙었다. 보험사들이 서슬퍼런 감독당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양측 모두 그럴만한 상황이다.
논란의 핵심은 소멸시효가 지나 지급하지 않은 약 2천억원의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다. 금감원은 대법원의 결정과 상관없이 지급하라는 입장이고 보험사들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도 지급하라며 5월말까지 계획을 제출하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생명보험사들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으름짱을 놨던 금감원은 당장 중징계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보험사들의 강경한 태도가 당혹스러운 모양이다.
양측의 입장을 모두 살펴보자. 먼저 보험사들 입장이다. 사실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얼마남지 않았다. 또 현재 진행중인 관련 소송들 역시 대부분 보험사들이 유리한 상황이다. 보험사들 입장에서 배임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법원의 판단을 무시하고 자살보험금을 선뜻 내주기는 쉽지 않다. 오너가 아닌 보험사 경영진이 이런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도 이해는 간다.
감독당국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지급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고객과의 약속에 따라 지급해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징계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대법원의 판단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와서 물러설 명분도 없다. 또 금융소비자들의 권리를 지켜야 할 감독당국의 책임 역시 분명하다.
하지만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은 곱지 않다. 보험금을 주지 않고 소멸시효가 지나도록 버틴 보험사들을 바라보는 여론의 눈총은 더욱 따가워졌다. 한편으로는 법치주의 국가에 대법원의 결정이 상관없다는 감독당국의 태도 역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미 양측 모두 물러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징계와 행정소송이 되풀이되는 장기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누구 편을 들기도 어렵지만 분명한 건 자살 보험금을 지급해달라는 소비자 분쟁 신청이 처음 들어왔던 2005년에 해결했어야 할 일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