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태양의 후예’는 어쩌면 마지막 작품일지도 모른단 생각으로 촬영한 작품이에요. 그 정로 제겐 중요한 드라마였는데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어서 요즘 행복해요”
배우 송혜교는 ‘행복하다’는 소감으로 말문을 열었다. 20일 포시즌스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송혜교는 차분한 목소리와 털털한 말투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차분히 내용을 필기하는 등 성의 있는 답변에 신경 쓰는 모습에서 평소 그의 진중한 성격이 엿보였다.
그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이후 3년 만에 선택한 작품은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였다. 극중 대학병원 전문의 강모연을 연기했던 송혜교는 이번 작품으로 스타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다시 한 번 인정받았고,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동료 배우들이 모두 잘 된 게 가장 좋아요. 특히 최근 홍콩 프로모션에서 드라마 인기를 실감했죠.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송중기 씨를 알아보고 ‘오빠 오빠!’하는데 엄마의 마음으로 뿌듯했어요”
드라마는 특전사 대위 송중기(유시진 역)와 송혜교(강모연 역)의 달콤한 멜로를 중심으로 군인과 의사의 눈으로 본 인간애까지 녹여내며 큰 사랑을 받았다. 송혜교는 멜로 호흡을 맞췄던 송중기에게 공을 돌렸다. “사실 처음 ‘태양의 후예’ 대본을 받았을 때 ‘남자 주인공의 역량이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겠다‘ 싶었거든요. 다행히 그 어려운 걸 송중기 씨가 해냈고(웃음) 덕분에 저도 편하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송송커플’이란 별명까지 붙여지며 사랑 받은 두 사람의 케미는 드라마의 인기를 이끈 일등공신. 남달랐던 커플 호흡의 비결을 물었다. “케미는 혼자 이룰 수 없죠. 연기할 때 송중기 씨 눈빛에 실제로 설렐 만큼 호흡이 잘 맞았거든요. 그런 현장 분위기가 좋은 반응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또 예쁘게 연출해주신 스태프 분들의 덕도 크죠”
극중 시진-모연의 연애를 응원하는 시청자들이 늘어나면서, 두 사람은 때 아닌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뉴욕에서 휴가 중이었어요. 패션위크 기간이라 정말 많은 스타 분들을 만났는데, 송중기 씨를 만난 것만 집중적으로 기사가 나더라고요. 거기서 만난 후배한테 ‘야, 우리 스캔들 날지 모르니까 밥은 먹지 말자’고 하기도 그렇잖아요. 송중기 씨는 스타일리스트가 준 팔찌를 하고 있었고, 제 팔목에 있던 건 머리 묶는 고무줄이었는데 커플 팔찌라고 소문이 났더라고요. 재밌는 해프닝이었죠”
‘태양의 후예’ 속 송혜교의 연기는 확실히 물오른 느낌이었다. 특히 15회에서 정점에 달한 감정 연기는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기 충분했다. 그는 “‘태양의 후예’ 강모연은 유시진을 만난 이후로 행복, 아픔, 슬픔을 오가면서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는 여자에요. 특히 하루 촬영했다가 쉬고 또 다시 일주일 촬영하고 이런 식으로 진행돼서 감정 잡는 게 쉽진 않았어요”라고 회상했다. 또 눈물 연기에 대해서는 “우는 연기할 때 표정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내가 울 때 이런 표정일거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몰입이 깨지거든요. ‘가을동화’ 때부터 눈물 신에서는 메이크업 고쳐주시는 분들 포함, 아무도 옆에 못 오게 부탁하는 스타일이에요”라고 설명했다.
또 송혜교는 ‘태양의 후예’를 둘러싼 갖가지 이견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먼저 김은숙 작가 특유의 대사들이 오글거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극중 모연이가 혈액형을 묻는 시진에게 ”인형? 미인형? 당신의 이상형?“하는 장면이 민망해서 죽겠더라고요. 제가 20대였다면 더 당당하게 했을 텐데 이 나이에 하려니 ‘보시는 분들도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되려 감정신보다 그런 모연이의 뻔뻔한 대사 수위를 더 많이 고민한 기억이 나요”라는 솔직한 대답을 전했다.
더불어 극 후반부로 빨라진 전개와 일부 편집된 장면 탓에 부족해진 개연성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촬영할 땐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몰랐는데, 스토리 구성이 과하다고 느끼신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물론 편집된 장면이 추가됐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템포가 느려져서 전개가 지루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특히 송혜교는 “모연이로 살면서 행복했던 건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본인의 실제 성격을 털어놓기도 했다. “절 굉장히 여성스럽거나 새침떼기로 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근데 전 오히려 ‘남자답다’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정말 털털하고 선머슴같단 이야기도 많이 듣는데 공적인 자리에서 그럴 수 없으니까, 꾹꾹 참고 이미지 관리하는 것이거든요(웃음) 그래서 모연이가 거침없이 표현하거나 툭툭 던지는 대사들이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태양의 후예’로 송중기가 한류스타 반열에 올랐다면, ‘원조 한류스타’인 송혜교는 입지를 굳힌 셈이 됐다. 2000년 드라마 ‘가을동화’부터 2004년 ‘풀하우스’로 중국 시장을 열었고, ‘태양의 후예’로 다시 한 번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한류의 시작은 ‘가을동화’부터죠. 너무 잘난 척 했나요?(웃음) ‘가을동화’ 은서와 ‘풀하우스’ 지은이는 상반된 인물이었는데 중국 팬들은 명랑하고 쾌활한 지은이 캐릭터를 유독 좋아해주셨던 것 같아요. 이후에 작품성 위주로 선택하다보니 살짝 주춤했다가 이번 ‘태양의 후예’로 다시 사랑 받게 됐죠”라고 자평했다.
이어 그는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조용해지면 또 다른 배우가 등장해서 한류 열풍을 이어왔어요. 우리나라 모든 한류 배우들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준 거죠. 저 역시 한류에 힘을 보탠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에요”라는 겸손한 답을 덧붙였다.
1996년 교복 모델로 데뷔한 송혜교는 올해로 데뷔 20년차의 여배우가 됐다. 데뷔 이후 줄곧 톱스타 자리에 있었던 송혜교로 사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전 정말 평범해요. 힘들어서 울기도 하고 스트레스 받아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또 여행 가서 행복해 하기도 하고 정말 다를 게 없어요. 직업이 연예인이라는 것만 빼면 제 또래 여자 분들과 똑같은 삶일 거에요”
그는 아직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캐릭터에 목마르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캐릭터, 작품, 시나리오 3박자가 딱 떨어지는 작품을 찾기가 쉽진 않아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캐릭터나 장르가 더 다양해졌으면 해요. 사실 여배우들은 남자배우들만큼 선택의 폭이 넓지 않거든요. 앞으로는 저 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여배우들이 좋은 기회를 많이 얻었으면 해요”라는 의미 있는 답을 전했다.
송혜교란 이름은 브랜드가 된지 오래다. 작품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매력은 물론이고 최근 일본 전범기업의 광고를 거절하는 등 의식 있는 행보가 알려지면서 이제 그는 이름만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독보적인 입지의 배우가 됐다.
하지만 궁금했던 건 ‘정작 본인은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은가’였다. 송혜교는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신인시절부터 ‘난 어떤 자리까지 올라가서 크게 될거야’란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드라마나 영화가 성공해서 ‘흥행배우’가 되는 것도 좋지만 대중들에게 ‘연기가 깊어졌다’는 말을 듣는 게 제겐 가장 중요하거든요. 늘 ‘전작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사진=UAA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