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를 극복하고 조국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벤 아르파 (출처: joe.co.uk) |
재능을 좀먹는 다혈질 성격
축구계에는 굉장한 재능을 보유했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다. 그들에게는 늘 ‘악마의 재능’, 혹은 ‘잊혀진 재능’ 같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축구팬들이라면 단 번에 떠올릴 발로텔리, 아드리아누, 카사노 같은 선수들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벤 아르파 역시 이번 시즌 시작 전만 해도 이 리스트에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거나, 혹은 리스트에 오르기 직전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템 벤 아르파는 튀니지 국가대표 출신의 아버지 ‘카멜 벤 아르파’ 밑에서 태어난 튀니지계 프랑스인이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큰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프랑스 최고의 축구 아카데미인 클레르퐁텐 아카데미에 뽑히면서 프랑스 최고의 재능 중 하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클레르퐁텐이란 우리나라로 치면 파주NFC 같은 프랑스 최고의 국가대표 축구 센터다. 여기에서 프랑스 최고의 어린 유망주들을 모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클레르퐁텐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데, 프랑스 출신 유명 선수들 중 대부분은 이 시설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벤 아르파는 12세에 프랑스 최고의 재능으로 인정받아 이 시설에 들어갔다. 요앙 구르퀴프, 사미르 나스리 등도 함께 훈련을 받았으며, 이제 앞으로 남은 축구인생은 탄탄대로인 듯 했다. 그러나 그의 다혈질 적인 성격은 축구인생을 조금씩 바꿔놓기 시작했다.
그는 아부 디아비와 훈련 도중 큰 다툼을 벌이며 문제를 일으켰고, 주중에는 클레르퐁텐에서 훈련을 받고 주말에는 FC 베르사유라는 팀으로 가서 경기를 뛰라는 지시를 받게 됐다.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그의 재능을 숨길 수 없었고, 15세에 당시 프랑스 최고의 팀이던 올림피크 리옹과 계약을 맺게 된다.
2년 뒤 17세에 친구이자 또 다른 최고의 재능인 벤제마와 함께 프로 계약을 맺음과 동시에 1군에 콜업 되었고, 서서히 출전 시간을 늘려나갔다. 그는 리옹과 함께 리그앙을 재패했고, 2007/2008 시즌에는 주전으로 도약하며 올해의 영 플레이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용하다 싶던 그는 절친 벤제마와의 다툼으로 이적 루머를 양산해 내더니 스킬라치와의 다툼으로 결국 리옹 생활을 끝내게 됐다. 타 리그 팀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대인배 리옹 회장이 “벤 아르파 같은 수준의 선수는 타 리그로 이적시킬 바에 리그앙의 발전을 위해 라이벌 팀으로 이적시키겠다.” 라는 말과 함께 그를 마르세유로 이적시켰다.
마르세유에 와서도 성깔은 변하지 않았다. 2009년 7월 지브릴 시세와 다툼을 벌였고, 시세는 선덜랜드로 이적했다. 또한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 경기 전 준비운동 중 음밤비와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다행이 성깔만큼이나 여전한 재능 덕에 2009/2010 시즌에는 에이스의 상징인 등번호 10번을 달고 마르세유가 리그앙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기분 좋은 시즌을 보낸 후, 2010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뉴캐슬이 그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임대 후 완전이적을 제시한다. 그러나 임대료가 맞지 않아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고, 벤 아르파는 또 다시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그는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팀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데샹 감독과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고 말했다. 그리곤 뉴캐슬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결국 일은 그의 뜻대로 이루어 졌고, 뉴캐슬은 그가 25경기 이상 출전시 완전이적을 조건으로 임대 계약을 맺었다.
뉴캐슬로 이적한 그는 첫번째 경기에서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에 승리를 안겨줬고, 팀에 새로운 에이스로 급부상 하는 듯 했다. 그러나 곱게 이적하지 않은 탓인지, 두 번째 경기에서 니헬 데용의 태클에 다리가 부러지며 남은 시즌을 모두 날리게 됐다. 때문에 이대로 마르세유로 돌아가는 듯 했으나 뉴캐슬은 마르세유에게 완전이적을 제시했고, 결국 뉴캐슬에 남게 됐다.
2010/2011을 모조리 날린 그는 2011/2012 시즌 돌아와 파피스 시세 등과 함께 뉴캐슬 돌풍을 일으켰다. 센스있고, 번뜩이는 플레이를 많이 하지만 이기적이라는 혹평을 많이 들었던 그는 2011/2012 시즌 막바지부터는 패스를 장착하기 시작하며 뉴캐슬의 메시가 되어갔다.
좋은 활약으로 유로 2012에도 프랑스 대표로 출전했던 그는 이후 2년간 축구선수로써 큰 문제 없이 살아갔다. 모두들 그가 철이 들었다고 생각할 때쯤, 삶이 너무 평탄하다 싶었는지 또 다시 문제를 일으켰다. 2014/2015시즌을 앞두고 체중관리에 실패한 그는 파듀 감독과 불화를 일으키며 헐시티로 임대를 가게 된다. 그러나 헐시티 감독 스티브 브루스는 그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난하며 그를 스쿼드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결국 2015년 1월 뉴캐슬과의 계약 종료와 함께 무적 신분이 되었다.
다행이 리게앙의 니스가 그에게 접근해왔다. 벤 아르파는 “만약 그 때 당시 레알이 자신을 영입하려 했어도, 내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라는 인터뷰로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입단을 확정 지었다. 그러나 자신의 행실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피파에서는 한 시즌에 2개 이상의 팀에서 뛸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데, 헐시티 임대 전 뉴캐슬 리저브 팀에서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그는 니스에서 뛸 수 없었다.
결국 다시 자유계약 선수로 풀린 그는 은퇴설까지 나돌며 모두에게서 서서히 잊혀져 가는 듯 했다. 그러나 2015/2016 시즌을 앞두고 니스는 그에게 다시 한번 계약을 제시했고, 등 번호 9번과 함께 다시 프랑스리그로 돌아왔다. 모두들 그의 멘탈, 떨어진 경기감각, 그리고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어 재능을 꽃피우기에는 늦은 그의 나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쉬는 동안 많은 심적 변화가 있었는지, 리그 초반부터 엄청난 활약으로 팀의 에이스가 되었고, 현재 11골 2도움을 기록하며 그의 축구인생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심리적 안정이 가져다 준 신체적 자유로움
벤 아르파는 프랑스로 복귀한 가장 큰 이유가 가족들을 비롯한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외국에서의 선수생활에서 느낀 압박이 꽤 컸던 것 같다. 니스로 돌아와 투톱 밑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프리롤 역할을 부여 받자, 부담감을 떨치고 자신의 진가를 완벽히 발휘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점은 득점이다. 스트라이커는 아니지만 항상 공격적인 포지션에서 플레이 했던 그는 의외로 한 시즌에 두 자리 수 이상 득점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팀 플레이에도 눈을 뜨자 득점도 터지기 시작했다. 아직 시즌이 1/3정도 남은 상황에서 이미 2자리 수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패스 성공률도 꽤 높아졌고, 슈팅을 많이 쏘는 편이 아님에도 꽤 좋은 정확도와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최고의 무기인 드리블 역시 여전하다. 플레이 특성 상 드리블 시도가 굉장히 많은데, 현재까지 경기당 드리블을 7회 시도했다. 이는 유럽 5대 리그(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통틀어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리그앙에서는 1위에 해당한다. 또한 경기당 드리블 성공률을 4.2회로 유럽 5대리그 통틀어 네이마르, 오스망 뎀벨레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리그앙에서는 2위에 해당한다. 1위 오스망 뎀벨레가 16경기 밖에 출전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리그앙 최고의 드리블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활약으로 맨 오브 더 매치에 3회나 선정되었고, 리그앙 선수 평점 9위에 오르며 자신의 축구인생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심리적 안정이 선수의 활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지 벤 아르파의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 증명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똑같은 역사가 반복 될까?
실력적으로는 충분히 증명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고, 어릴 적 받던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재능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로 보았을 때, 시즌이 끝난 뒤 그의 심리적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빅클럽으로 이적하고 싶다며 훈련에 참가를 하지 않는다든가, 자신의 활약에 자만한 나머지 프리 시즌 동안 체중관리에 실패해서 새로운 시즌을 맞이할 수도 있다.
벤 아르파 입장에서는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거두어 주고 믿어준 클럽에서 심리적 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활약을 이어나갈 것인지, 아니면 축구선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마지막으로 최고의 클럽에서 도전을 할 지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번에도 이전과 같은 상황을 되풀이 하며 안 좋게 팀과 헤어질지, 아니면 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지 궁금하다.
다사다난 했던 선수생활 중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벤아르파. 과연 남은 시즌 얼마나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줄지, 그리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며 이러한 활약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그의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