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각종 기업 구조조정 정책이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요즘 수년간 돈을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기업’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를 단숨에 망가뜨리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며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대책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기업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이나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추진,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역할 강화, 중소기업 신보증체계 구축 등이 대표작입니다.
물론 정부가 발표한 대책 중에는 눈여겨 볼만한 것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경제를 이끌어오던 몇몇 대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한계기업 몇 십 개, 아니 몇 백 개 정리한다고 우리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들이 ‘좀비기업’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쓸만한 인력과 기술력 빼가기를 일삼았던 일부 대기업과 이를 방조했던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1980년대 이후 주도 산업군의 변화가 크게 없었다는 점도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상실케 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30년 전 주력 산업이었던 전기전자(반도체, 휴대폰, 가전 등)와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은 여전히 우리 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가 해외에서 돈 잘 벌어오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특혜 아닌 특혜를 주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대기업들도 이 같은 특혜에 안주해 신기술 개발이나 신사업 육성 등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경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정부는 그동안 도대체 뭘 했을까.
박근혜 정부 들어 창조경제 육성을 외치며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 관료들이 창조경제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지는 의문입니다.
북부 유럽의 먼 나라 핀란드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 정부가 뭘 잘못하고 있는 지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핀란드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노키아는 지난해 주력사업이었던 휴대폰 사업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노키아의 몰락을 예견했던 핀란드 정부는 이미 2000년대 후반부터 핀테크와 모바일 게임, 앱스토어 등 새로운 ICT 부문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노키아로 대표되는 대기업 일변도의 산업정책을 중소·벤처기업 육성으로 180도 수정한 것입니다.
핀란드는 이를 위해 지난 2010년 정부 자금으로 ‘테케스(Tekes)’라는 벤처캐피탈을 설립해 벤처창업 생태계 조상에 나섰습니다.
테케스는 특히 ‘이노베이션 밀(Innovation Mill)’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기업들이 미처 활용하지 못한 연구개발 성과물을 수 많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게 제공했습니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령 실업 문제 해소를 위해서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일자리 알선에도 직접 나섰습니다.
은행들로 하여금 여신심사 강화를 통해 부실기업을 대거 퇴출시키도록 압박하고 있는 우리 정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 정책이 진정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 구조조정을 단순히 개별 기업과 채권단만의 문제로 치부하며 수수방관해서도 안됩니다.
구조조정에 앞서 이들 기업들이 한계 상황에 놓이게 된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재기할 수 기회를 만들어 주고, 이들 기업에서 제대로 된 임금도 못 받고 일하고 있는 선량한 근로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고용안정 대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이 지속성을 갖고 일관되게 추진되기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올 해 안에 몇 개 기업을 정리한다는 구시대적 발상부터 털어내야 합니다.
일부에선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식견이 없는 금융당국이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기업 구조조정. 나아가 산업구조 개편이 국가 경제와 시민 사회에 진정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산업과 노동, 복지, 교육, 금융을 아우르는 범 정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현 정부가 부르짖는 창조경제 육성이 국민적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독선과 아집, 조급증에서 벗어나 눈과 귀를 열고 시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