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인수 `김병주 MBK회장 `관심`‥골드만삭스·칼라일 거친 `M&A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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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그는 10세에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던 때였다.
소년 김병주는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는 국내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그를 두고 `고급스러운 영어를 가장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달변가`, `영어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으로 평가될 정도로 성장했다.
실제로 2009년 유럽 대형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내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최고 투자책임자가 그의 유창한 영어 구사 능력에 압도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저 아시아인이 도대체 누굽니까?"라고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 깊은 인문학 지식을 활용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 누구라도 후덕한 인상과 겸손한 말솜씨에 반하게 된다는 평가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은 월 가의 골드만삭스였다. 김병주 회장은 골드만삭스 시절을 "밤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코피 흘린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죽도록 고생해 다시는 월 가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결심까지 할 정도였다고 했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20대의 그가 골드만삭스에서 얻은 경험들은 훗날 엄청난 자산이 됐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적대적 M&A의 방어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는 M&A 광풍의 현장에서 2년 정도 경험을 쌓은 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더 큰 도전을 위해 하버드 MBA 과정을 밟았다.
하버드 MBA를 마친 김병주 회장은 발걸음도 하지 않겠다고 그토록 다짐했던 월 가로 돌아왔다. 그것도 골드만삭스라는 친정으로의 복귀였다.
그 이후 뉴욕 본사와 홍콩 지사를 거치며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 반을 더 일한 뒤, 33세이던 1996년 살로만 브라더스로 직장을 옮겼다.
하지만 살로먼에서의 생활도 3년을 넘지 못했다. 1999년 당시 최고의 사모펀드 운용사로 명성을 날리던 칼라일그룹에 입사했다.
칼라일에 들어간 이후 1998년 외환위기가 불러온 한국 M&A 시장의 급팽창, 그리고 외국계 사모펀드들의 M&A 맹활약 등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리고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것을 기반으로 김병주 회장은 37세이던 2000년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면서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의 주목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이는 칼라일 그룹 역사상 단일 규모로는 가장 큰 거래였고, 칼라일그룹 최초의 금융회사 투자이기도 했다.
심지어 입사 1년 만에 성사시킨 거래였다. 3억 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해 원금 대비 2.3배의 수익을 칼라일 그룹에 안겨줬다. 칼라일그룹이 설립 이래 거둔 가장 큰 규모의 수익이었다. 이게 2004년 초의 일이었다.
2004년 12월, 국내에 사모펀드법이 태동할 무렵 김병주는 이미 세계적인 사모펀드 운용사인 칼라일그룹에서 `거물`로 성장해 있었다.
그는 칼라일그룹 전체 매니지먼트 커미피 7인 멤버 중 하나였다. 칼라일그룹 경영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이 자리의 참석자는 창업자 3명과 유럽 헤드, 아시아 헤드, 벤처 헤드 등이었다.
그 아시아 헤드가 바로 김병주 회장이었다. 그는 한국 시장에 엄청난 변화,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을 직감했다. 드디어 정부가 주도하는 사상 초유의 사모펀드 시장이 한국에 열리고 있는 것을 목격한 그는 독립을 결심했다.
2005년 3월 1일, 하버드 동문인 윤종하 현 MBK파트너스 부회장을 비롯해 김병주 회장과 인척간인 부재훈 대표와 홍콩 헤드였던 케이시 쿵, 일본 헤드였던 켄스케 시즈나카 등 6명의 칼라일그룹 멤버들과 함께 아시아 지역 펀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15억 달러짜리 `MBK 1호 펀드`를 만들면서 사모펀드 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가 독립을 선언하자 칼라일그룹은 발칵 뒤집어졌다. 어쨋든 자신의 이름 석자 MBK (마이클 병주 킴)를 내건 사모펀드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 이름 앞에 붙길 원한 수식어는 딱 두 가지였다.`로컬`과 `독립`.
김병주 회장은 "사모펀드 역사상 최초로 한, 중, 일을 포괄하는 동북아 사모펀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투자 지역으로도 기존과 다른 형태의 펀드였기에 운용도 아시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당시만 해도 아시아 투자를 하는 데 뉴욕에 있는 미국 보스들의 결제를 받아야 했어요. 그 고리를 끊고 싶었던 겁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8월 7일 현재 홈플러스에 7조2천억에 배팅하며 국내 유통사업에 미래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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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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