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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칼럼] ‘암살’ 900만 돌파, 천만 임박… 최동훈의 뚝심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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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살’ 900만 돌파. 영화 ‘암살’이 관객 900만을 돌파하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사진 = 영화 ‘암살’ 스틸컷)


암살이 9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 초읽기에 들어갔다. 최동훈 감독은 ‘도둑들’에 이어 연속 천만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명량’이 민족정서를 직격하면서 1760만 관객까지 간 것처럼 ‘암살’도 민족정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물론 이순신 장군의 위엄에 버금갈 순 없겠지만, 어쨌든 천만을 넘긴 이후에도 당분간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역사는 패배의 역사이기 때문에 관객이 선호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부터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는 근대화시기를 끊임없이 조명한다. 그들에겐 승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린 그 반대다. 패망으로 이어지고 괴롭힘 당하는 우울한 이야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최동훈 감독이 독립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만류했다고 한다. 그래도 최동훈 감독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최동훈 감독의 뚝심이 놀랍다.

일각에선 ‘암살’이 독립군 이야기를 너무 가벼운 액션 오락물로 그렸다며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가벼운 액션 오락물이 아니었다면 관객은 우울하고 무거운 독립군 이야기를 외면했을 것이다. 전지현, 하정우의 패션과 액션으로 버무렸기 때문에 독립군 이야기가 천만을 돌파하는 기적이 가능했다.

그런 대중적 성공을 통해 ‘암살’은 우리 근대사를 다시 되새기게 하고 있다. 최근 역사교육이 경시되면서 젊은이들에게 ‘역사적 기억상실’ 증상이 나타났었다.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암살’의 의미가 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오락영화로선 최고의 미덕이다.

최동훈 감독은 우당 이회영 선생에 대한 책을 읽은 후 감명 받아 독립군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이회영은 ‘오성과 한음’에서 오성에 해당하는 백사 이항복의 자손으로, 이항복 이후 정승만 10명을 배출한 조선 최고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이회영을 비롯한 여섯 형제는 40만원에 달하는 집안 재산을 모두 처분해 만주로 넘어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당시 40만원은 오늘날 600억원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회영 등은 헤이그 밀사 파견, 신민회, 의열단 등 많은 독립운동에 관여했고 특히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 3500여명을 길러냈다. 지청천 장군이 신흥무관학교 출신 부대를 이끌고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다. 이회영은 뤼순 감옥에서 허리가 부러지는 등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숨졌고, 다른 형제들도 병들거나 굶어죽었다. 해방 후 조국을 밟은 이는 다섯째 이시영이 유일하다.

이 이야기는 ‘가진 자, 배운 자, 벼슬한 자’가 조국이 위급한 상황이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범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어떤가? 우리 현실에서 ‘가진 자, 배운 자, 벼슬한 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고위직 청문회 때마다 온 국민이 목도한다.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역사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해방 후, 희생한 열사가 대우받고 배신한 친일파는 처단됐어야 했다. 그걸 못했다. 열사는 버림받았고, 잊혀졌고, 그 후손은 거지꼴로 살아야 했다. 반면에 친일파는 처단되지 않았다. 그걸 가능케 한 마법이 반공이었다.

친일파는 반공투사로 변신했고 그것을 바탕 삼아 한국 기득권층으로 똬리를 틀었다. 그들의 자손은 대대손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요직을 차지했다. 최근에 그들은 자손을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만들어 군대를 회피하면서 국내에서 누릴 것은 다 누리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다. 이런 역사는, 국가를 위해 헌신할 필요가 없고 오직 일신의 영달만을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암살’은 비록 오락영화이긴 하지만 바로 이런 비틀어진 역사를 기억하자고 관객에게 외친다. 반민특위가 어떻게 무력화됐는지, 반역자가 어떻게 해방 후에 살아남았는지, 그것을 그려준다.

‘암살’의 마지막 장면은 판타지다. 서울 한복판에서 갑자기 허허벌판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현실일 수 없다. 결말에 판타지를 제시한 것이다. 그 판타지는 바로 역사 바로 세우기다. 현실에선 뒤틀린 역사지만 판타지에서나마 바로 세우자는 외침. 그것이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줬다.

아직도 독립운동사는 제대로 복원되지 못했다. ‘암살’에서 그려진 것처럼 수많은 열사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역사에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들의 이름을 복원하고 기억해야 한다. 더 이상 독립군의 자손이 외면 받는 나라가 돼선 안 된다.

헌신하고 희생한 자를 제대로 기억하고 대우해주는 전통이 확립돼야 우리 후손들도 나라를 위해 희생할 것이다. 우리가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일본 우익은 더욱 한국을 깔볼 것이다. 우리부터 역사를 바로잡아야 일본에게도 역사를 바로잡으라고 당당히 요구할 것 아닌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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