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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리가 흰 셔츠에 목을 매는 이유"...연극 ‘모범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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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극이라고 언급하지 말라. 한국에 모든 청년들에게 닥친 현실을 더욱 섬뜩하게 보여주기 위해 청소년이 나온 것뿐이다. 이 연극은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오늘에 대한 이야기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전부 착하지는 않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누구나 어릴 적에 부모님의 입을 통해 한 번쯤은 들었던 말이다.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의 기준은 매우 모호하지만 부모님께서 염두에 둔 ‘좋은 친구’는 공부 잘하는 소위 모범생이다. 어른들의 기준에 모범생들은 부모님을 포함한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듣는 아이들로 분류되어 특별대우의 대상이 되는데, 그 평가의 기준은 성적이다.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들은 좋은 인성을 가진 아이로 통칭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아무리 어른들 말씀을 잘 듣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등의 선행을 보여도 특별대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불성실하게 행동한 결과물이라는 치부가 되어 이런 부류의 아이들에게 씌워진 편견이 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모범생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인성을 가진 아이들일까? 사람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는 금물이지만 모범생들의 성적만을 보고 그들의 인성까지 보장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그 오류가 실제 단어 그대로 ‘오류’에 그치지 않아 사회적인 문제로 곪아가는 현실에 대해 색다르게 조명한 작품이 연극 ‘모범생들’이다.

모든 것을 함축해 놓은 첫 장면

외고 동창생 결혼식 날 화장실에서 만난 두 남자의 대화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마치 잘난 척 대결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자신이 가진 것과 이룬 것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내뱉는다. 관객은 이 두 남자의 말을 통해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가진 의식적 측면을 아주 리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작품은 단순히 대화만을 가지고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핀 조명 활동해 연기 공간을 나누고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동창생과의 조우 장면을 연출한다. 카메라의 찰칵 소리는 음향으로 활용하고, 이를 조명과 조화시켜 장면의 템포를 순간적으로 정지시켜 시각성을 강조했다. 미장센과 인물의 말을 절묘하게 섞어 사회 전반의 피폐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회의 통념과는 다른 모범생의 어제와 오늘

연극 ‘모범생들’은 왕년에 모범생이었을 화이트칼라 계층에 속한 두 남자의 조우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작품은 두 남자의 학창시절에 일어났던 컨닝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택시 운전수 아들인 모범생 명준과 감귤 농사꾼 아들 수환, 학교에 기부금을 내고 들어온 전교 꼴지 종태, 재력가의 아들이자 전교 일등인 민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컨닝 사건은 표면적으로 보면 고교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학력 쟁취 신경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컨닝을 주도하는 인물은 모범생인 명준과 수환이다.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실력과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버린 명준은 이미 모범생이면서도 컨닝을 감행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는 부정의인 컨닝에 동참하자고 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는 부정의에 반대할 것이라는 게 사회 통념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이다. 사회 엘리트층들의 부정부패와 비리, 각종 지능 범죄 등이 매일 아침 신문 일면을 장식하는 것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회통념에 반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반대의 양상은 사회에 팽배한 이면을 보여준다.

작품은 편견과 가식으로 점철된 엘리트층을 명준과 수환, 민영을 통해 보여주고, 나머지 계층은 종태를 통해 언급한다. 단적인 사례로는 문제아로 낙인된 종태가 명환과 수환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부분과 모범생으로 낙인된 명준과 수환이 자신에게 있는 모범생 타이틀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다. 외톨이던 종태는 명준과 수환을 진짜 친구로 받아들이지만, 명환과 수환은 종태가 선생님에게 이를 것이 두려워 이 사실을 숨기고 종태에게 호의를 베풀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등장한 고등학생들의 이러한 미묘한 관계는 결국 사회의 단면이다. 공부 잘하는 애는 성공하고, 공부 못하는 애는 서민적인 인물로 성장하게 되어 나중에는 서로를 친구로 여기지 않게 된다는 결말을 통해 여실히 알 수 있다.



빠른 전환을 위한 조명과 음향의 속도, 그리고 빈 무대

혹자는 이 연극을 느와르 연극이라 칭한다. 전환이 빠르기 때문이다. 음향과 조명 또한 전환만큼 빠르다. 게다가 말을 걷어내고 시청각적 요소를 통해 변화를 도모하며 인물의 정서를 강화하는 미장센을 활용한다. 장면변화 구현방식에서의 두드러진 특징 또한 도구와 세트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 볼 수 있다. 물론 앞면과 뒷면이 다른 세트를 밀어 전환시켜 장소의 변화를 준 장면도 있지만 주로 조명, 음향이 장소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배우의 말과 동작으로 장면의 정서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미장센이 부각 시킨 인물의 심리

이 작품에서 강조된 부분은 인물의 심리묘사이다. 이 역시 배우의 말에 기대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 구현한다. 작품은 배우들의 동작, 음향, 조명의 타이밍을 잘 맞추어 순간마다 완성된 미장센을 통해 심리묘사를 연출한다. 명준과 수환, 종태가 컨닝으로 인한 재시험을 막기 위해 반장인 민영을 압박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민영을 몰아세우는 방법으로 몸으로 막기, 의자를 밀어 구석으로 몰기 등의 블로킹과 스릴러 영화에 나올법한 빠른 템포의 음향 효과를 잘 버무려 표현했다. 컨닝 사실이 밝혀진 순간 역시 비슷한 맥락의 미장센이 만들어진다.

이 작품에서는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상징적인 말을 많이 내뱉어서 작품의 메시지를 강화한다. ‘머리만 믿어라. 고3에게 심장은 없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을 바꿀 수는 없다’ 등은 매우 현실감 있고 정제됨이 없는 대사들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었을 법한 말들이라 더 섬뜩하다.

또한 이 연극은 외국어를 활용한 명언을 쏟아내는 부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중요한 메시지로 언급하고자하는 지점을 외국의 명언들로 대체한 것이다. 이는 작품의 호흡을 끊어 극적 몰입을 방해하면서도 장면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강하고 직선적인 방법으로 진지하고도 빠르게 말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이 외고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사건인 만큼 명준의 입에서 외국 명언이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한 타당성도 있다.

흰색이 가진 이중성

연극 ‘모범생들’이 청소년 문제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는 흰색의 상징을 여러 번 반복적으로 노출시킨 점이다. 엘리트 집단을 상징하는 화이트칼라에 대한 동경과 그들의 실체는 작품을 통해 풀어나가면서도 이들에 대한 상징성은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흰색’을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이는 민영의 결혼식 장면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연극에서는 흰 셔츠를 많이 걸어놓은 세트를 등장시키고 그 위에 그림자로 민영을 등장시킨다. 이를 통해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 않지만 존재감이 어마어마한 화이트칼라의 사회적 입지가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지점을 읽어낼 수 있다. 흰 셔츠 이외에 등장한 흰 가면, 흰 봉투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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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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