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2,451.58

  • 4.33
  • 0.18%
코스닥

677.17

  • 1.02
  • 0.15%
1/3

[하재근 칼럼] ‘풍문으로 들었소’ 고아성과 이준이 비호감이 되는 이유

관련종목

2024-12-02 12:27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고아성과 이준(사진 = SBS)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대한민국을 막후에서 움직이는 새로운 권력인 대형로펌과 그 주변인물들의 묘사를 통해, 한국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풍자한 작품이다. 드라마 초반엔 로펌 왕국의 주인인 유준상, 유호정 부부의 위선적인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려 찬사를 받았고, 서민의 딸인 고아성이 왕국의 세자빈으로 들어가 똑 소리 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시청자를 통쾌하게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선 이 작품의 등장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 대상이 풍자의 대상인 유준상 부부가 아니라 처음에 시청자가 감정이입했던 이준, 고아성 부부가 되고 있다. 게다가 비서를 비롯해 대형로펌 귀족에게 저항하는 주변인물들에게도 비난이 쏟아진다. 작가도 이런 상황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유준상, 유호정 부부가 너무 허당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 부부는 극 초반 고아성이 아이를 낳은 직후만 해도 냉혹한 모습으로 시청자의 공분을 사는 듯했다. 물론 이때도 유준상이 냉혹한 지배자 역할을 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있긴 했다. 그런 역할을 전담하다시피하는 박근형 등에 비해 유준상은 어딘가가 비어보이는, 아무리 근엄한 표정을 지어도 웃음이 깔려있는 듯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쨌든 고아성을 감금하다시피하고 산모로부터 아이를 빼앗는 설정이 유준상 부부를 악한 인물로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이준이 그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부모에게 일격을 가한 것이다. 그 이후 결혼부터 신혼 과정에 이르기까지 유준상 부부는 지속적으로 허둥대며 당하는 역할만을 맡았다. 대형로펌 갑질사가 아닌 대형로펌 수난사로 극이 흘러갔던 것이다.

    유준상은 최대 근심이 탈모일 정도로 인간적이고, 소박하고, ‘찌질’하고, 불쌍한 인물로 그려졌다. 근엄하게 허세를 떨며 인사를 받는 것 말고는 그가 하는 악행이 없었다. 동시에 그는 며느리가 명석한 면모를 보이면 금방 좋아하고 으스대는 강아지 같은 면모도 보였으며, 첫사랑에게 돌진하는 낭만적인 소년 같은 면모도 보였다.

    유준상 캐릭터는 남에게 해를 끼치기보다 어떻게 하면 고아성 집안에 도움을 줄까 생각하며 전전긍긍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물론 그 이유는 자기 체면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베푸는 캐릭터였다. 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고아성을 한국 최고의 상류층으로 만들어주려 하기도 했다.

    유호정은 겉으론 위세를 떨지만 사실은 자기 혼자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허당 캐릭터로 그려졌다. 유호정이 모처럼 격분해 소리칠 때 비서가 입을 막아버릴 정도였다. 남한테 해를 끼친다기보단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는 인물이었다. 부잣집 공주님으로 자라 소심하고 순수하기만 한 인물로 그려졌다.

    시청자가 유준상-유호정을 악의 축으로 느낄 수 없도록 극이 흘러왔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준과 고아성이 유준상 부부를 공격하겠다고 나서자 시청자가 불편감을 느끼게 됐다.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주위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니는 비서와 그에 부화뇌동하는 고아성 삼촌도 역시 시청자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하인’들은 유준상 부부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조롱하고, 뒷담화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러다 갑자기 유준상 부부를 공격하고 나서자 이에 대해서도 시청자가 감정이입을 못하고 있다. 요컨대, 극이 초반에 유준상 부부를 너무 재미있게 잘 묘사한 결과 후반에 주인공과 을들이 유준상 부부를 공격하는 설정에 시청자들이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시청자의 의식이다. 드라마 시청자들은 가난한 인물보단 부자에게 감정이입하며, 주인공의 신분상승을 응원하는 경향이 있다. 초반엔 고아성이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부모를 공격하는 것으로 바뀌자 시청자의 시선이 달라졌다. 유준상 부부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세계가 깨지지 않길 원하는 것이다. 그 세계가 자신의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비록 ‘풍문으로 들었소’가 지금까지 유준상 부부의 인간적인 면모를 묘사하면서 시청자가 그들에게 감정이입하도록 유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당노동행위나 부정경제행위에 연루됐다는 정보도 간간이 제시해왔다. 고아성의 삼촌은 유준상의 로펌이 관여한 일 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설정으로 나온다.

    드라마 속에서 아무리 정서적으로 유준상 부부가 친근하게 느껴지더라도, 간간이 주어진 정보로 이성적 판단을 해보면 그들이 반사회적 악덕을 행해왔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금 시청자들은 유준상 부부에게 반하는 인물들을 비난한다. 부자를 향한 열망, 화려한 세계를 향한 병적인 선망이 사리분별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이렇게 소수 갑에게 감정이입하면서 그에 반하는 을들을 공격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한, 대한민국의 갑을관계가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염색되는 샴푸, 대나무수 화장품 뜬다
    한국경제TV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