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어원은 ‘얼꼴’이라고 한다. 얼꼴은 ‘얼의 꼴’,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영혼의 모습’이다. 배우 김대현을 마주하면서 자주 ‘얼꼴’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영혼을 그대로 비춰내는 얼굴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해서.
김대현의 얼굴은 투명하다. 그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동안 자주 웃었고, 집중한 듯 자주 미간을 좁혔다. 개구진 얼굴로 장난을 걸다가도 금세 이야기에 몰입하느라 눈을 매섭게 뜨곤 했다. 순식간에 변하는 수만 가지의 표정들을 보면서 문득 그의 무대 위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무대 위의 얼굴이 일상의 표정으로 겹쳐지는 순간, 깨달았다. 그의 연기는 ‘만들어낸 것’이 아닌 ‘진짜’라는 걸.
4월 중순,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뮤지컬 ‘로기수’에 출연 중인 배우 김대현을 만났다.
힘겨움의 연속이었던 뮤지컬 ‘로기수’ 연습
김대현은 뮤지컬 ‘로기수’에서 주인공 ‘로기수’ 역으로 활약 중이다. 작품은 거제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인민군 소년 ‘로기수’가 탭댄스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진한 형제애, 꿈에 대한 메시지, 열정적인 탭 등이 오랜 잔상으로 남는 작품이다. 그는 공연 중반에 이른 요즘 리딩공연 ‘푸른 연꽃’에도 참여하고 있다.
리딩공연 ‘푸른 연꽃’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함께하게 됐다. “노래가 정말 좋아요”라는 말과 환한 미소로 작품에 대해 운을 뗀 그는 “뮤지컬 ‘로기수’를 하면서 리딩공연에 들어가게 됐어요. 리딩공연을 하면서 배우는 게 또 있더라고요. 리딩공연의 대본을 보다가 ‘로기수’ 공연을 하러 가면 새롭게 보이는 게 있어요. 리딩공연은 정서를 쓰긴 하지만 정보전달이 목표고, 대본도 보면서 해서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라고 근황을 전했다.
최근 김대현은 살이 많이 빠졌다. 뮤지컬 ‘로기수’에서 어마어마한 탭댄스 연습량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8kg까지 빠졌던 살은 근래 쉬면서 4kg 정도가 다시 돌아왔다. “요즘 조금 쉬었더니 다시 4kg이 쪘어요. 쉬는 게 더 안 좋은 것 같아요. 뮤지컬 ‘로기수’하면서 너무 힘드니까 집에서 쉴 때는 먹고 자고만 반복하더라고요. 한 번 먹으면 좀 심하게 먹는 편이라. 4kg은 금방 빠져요.(웃음)”
뮤지컬 ‘로기수’ 출연은 연극 ‘모범생들’에서 함께했던 김태형 연출과의 인연 덕이었다. 김태형 연출이 뮤지컬 ‘로기수’를 준비하며 김대현에게 ‘로기수’ 역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 다른 작품을 준비 중이었던 김대현은 출연을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김태형 연출님이 작품 준비하시면서 ‘너 춤 잘 추니까 한 번 해볼래?’라고 하셨어요. 다른 작품 연습 중이라 안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다음에 꼭 하자’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기다리고 있었죠. 사정상 연락이 조금 늦게 왔어요. 연습도 (윤)나무하고 유일이 보다 늦게 들어갔고요. 제가 김태형 연출님을 정말 좋아해요. 연출님이 하자시니까 시놉시스도 모른 채로 하겠다고 했어요. 연출님이 ‘너 춤춰야 된다. 하자’하셔서 ‘예, 하겠습니다’ 한 거죠.(웃음)”
뮤지컬 ‘로기수’는 탭댄스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만큼 탭댄스의 분량도 많고, 소화해야 할 안무도 많다. 현대무용, 힙합, 재즈 등의 춤을 섭렵한 김대현이지만, 탭은 그에게도 낯선 장르였다. 탭 연습 당시에 대해 묻자 그의 눈썹이 금세 축 처졌다. “처음엔 탭댄스도 들어가고 다른 춤도 들어갈 거라고 하셨어요. 사정상 늦게 캐스팅이 돼서 공연 두 달 전에 탭 연습에 들어갔어요. 정말 죽어라 했어요.”
무대 위에서 발을 구르는 김대현의 탭 실력은 상당하다. 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는 탁월한 리듬감과 지독한 노력으로 ‘탭’에 담긴 열정을 무대 위에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그의 말대로 ‘죽어라 연습’한 보람이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루에 가장 많이 연습했던 게 12시간”이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연습 시작할 때 같은 ‘로기수’ 역의 (윤)나무와 유일이가 저한테 탭을 가르쳐 줬어요. 처음 탭을 추는데 제 발이 너무 느렸어요. 미치겠더라고요. 발목이 제 발목이 아니었어요. 너덜너덜.(웃음) 계속 하다보니까 편해지면서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지금은 되게 재밌어요. 제가 앙상블만 5년을 했고, 대학 다니면서 2년간 춤만 췄거든요. 춤 자체를 굉장히 좋아해요. 그런 상태에서 발목에 배니까 이제 탭이 몸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는 춤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배우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부터 힙합, 재즈, 발레, 현대무용 등에 관심이 많았다. 수많은 춤 중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춤을 묻자 “현대무용”이라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온 몸을 다 쓰는 춤을 좋아해요. 막 구르는 거요.(웃음) 재즈틱한 느낌의 ‘밥 포시’ 같은 춤도 굉장히 좋아해요. 예전에 뮤지컬 ‘더 라이프’를 하면서 서병구 선생님께 많이 배웠죠. 현대무용은 최인숙 선생님께 많이 배웠고요.”
뮤지컬 ‘로기수’ 연습은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연습 당시에 대해 “정말 힘들었다”라는 짤막한 한 마디와 가벼운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옆에 있던 공연관계자는 ‘김대현 배우가 힘들다면 정말 힘든 거다. 원래 긍정적인 분이라 힘들어도 안 힘들다고 하는 분’이라며 말을 거들었다.
김대현이 ‘힘들다’고 공언한 것처럼, 뮤지컬 ‘로기수’엔 유독 배우들이 소화해야 할 것들이 많다. 탭은 물론 대사, 사투리, 노래, 감정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이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특히, ‘로기수’ 역을 맡은 배우들은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집에서 두문불출할 정도로 집에서 지쳐 쓰러져 잠드는 일과를 반복하고 있다. 김대현도 마찬가지다. 연습을 하면서도 그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고 설명했다.
“저 스스로에게 짜증이 많이 났어요. 잘 안되니까. 연습 때 정말 힘들더라고요. 이 작품은 정말 많은 것들을 해야 해요. 탭, 사투리, 대사, 노래도 있고요. 사실 노래와 춤, 대사는 할 수 있겠는데 사투리가 너무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북한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보고요.”
그의 사투리 연기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바로 ‘아버지’다. 고향이 평안남도였던 할아버지의 말투를 그의 아버지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와 술 마시면서 개인 레슨을 받았다”며 웃었다.
“이제는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또 잘 모르겠어요. 공연을 하면서 사투리가 몸에 배긴 했는데, 다시 한 번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무조건 해피엔딩!
김대현에게 ‘로기수’라는 인물에 대해 묻자 끝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는 대답 내내 ‘로기수’를 ‘자신’이라고 칭하며 극중 느끼는 감정, 움직임, 대사에 대해 열렬히 설명했다. 그의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말만 보아도 기수라는 인물에 대한 그의 고민과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기수가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고 해서 진지하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저희는 ‘허세’라고 말을 붙였는데, 기수의 극중 나이가 17살이잖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년 밖에 안 된 시점이거든요. 인민군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2개월 뒤에 들어간 거고요. 작가님이 작성해 놓으신 연표 같은 게 있어요. 거기 보면 반년 정도 후에 압록강 전투에서 (로)기진 형이 공을 세워요. 그리고 다시 반년 만에 미군에 포로가 된 거고요. 뮤지컬 ‘로기수’의 시점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년 3~4개월 뒤의 이야기라고 보면 될 거예요.”
김대현은 수용소에서 살아가는 기수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그의 말은 기수가 형에게 갖게 되는 감정의 시발점부터 작은 행동의 이유까지 상세했다. “제가 1년 정도 배식담당을 하고 있었는데 이 일이 굉장히 지루해요. 아직 어리고요. 기진이 형이 저를 살리기 위해 애쓰다가 높은 자리까지 가게 된 거거든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 동생을 살리려다 더 무서워지듯이요. 저는 그런 형의 모습을 싫어해요. 어렸을 때처럼 형과 재미있게 살고 싶어 하고요.”
김대현이 뮤지컬 ‘로기수’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연습 과정에서 남북에 대한 이야기, 형제애, 꿈 등 다양한 요소들을 읽었지만 무엇보다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제가 작품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기수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어요. 1막에선 마냥 어린애거든요. 철없고, 허세부리고요. 2막이 되면 ‘내가 살면 형이 죽고, 내가 죽어야 형이 산다’고 노래해요. 돗드에게 총을 쏘는 장면에서도 동무들을 생각해서 ‘동무들 미안하오!’라는 대사를 하고요. 원래는 없던 대사였어요. 이 대사 없이 마냥 총을 쏘니까 마음이 참 그렇더라고요. 극중에서 댄스단 동무들은 무대에 올라가 안돼요. 잘못하면 제 친구들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거든요. 전 저희 형을 생각해서 올라갈 수밖에 없고요. 중간에 ‘나 혼자 올라가갔습니다’라는 대사를 하는데, 원래는 ‘나 혼자라도 올라가갔습니다’라는 대사였어요. ‘나 혼자라도’라는 말이 그렇게 이기적이더라고요.”
그는 대사 한 줄에도 ‘로기수’ 역을 맡은 배우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고민의 지점이 같을 땐 연출과 함께 상의했고, 그들의 의견은 적극적으로 작품에 반영됐다. 김대현은 ‘로기수’라는 인물에 대해 “지금도 찾고 있다”며 “형 밑에서 철없이 있던 애가 주변을 위해서 ‘희생정신’을 배우는 것 같아요”라고 입을 열었다.
“극중에 ‘나 하나 즐겁자고 고향도 가족도 버리란 말입네까’라는 대사가 있어요. ‘내 춤이 아무리 좋아도 기케는 못하겠다’라고요. 그러면서 조금씩 철드는 것 같아요. 1막 때는 제가 굳이 무언가 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요. 우리 배우도 너무 잘하고요. 극 전반부에서는 미국을 싫어하는 아이, 형과의 관계, 미제에 눈을 뜨면서 꿈을 꾸게 되는 모습을 그려요. 미국은 너무 싫은데 춤이 정말 좋은 거죠. 2막에서는 춤을 정말로 사랑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요.”
한창 무대에 오르고 있는 지금도 김대현의 고민은 진행 중이다. 그는 ‘아직도 무대에 오르면 보이는 게 많다’며 운을 뗐다. “이 작품에서 저는 너무 밝아도, 너무 어두워도 안돼요. 그래서 공연을 할 때 마다 표현하는 게 달라져요. 무대 오를 때마다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물론 텍스트는 변화가 없어야 하죠. 요즘에는 안 보이는 곳에서도 디테일을 만들려고 해요. 상대방이 대사를 할 때 제가 반대편에서 얼마만큼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이 정말 어려워요. 정말 신기한 건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대사를 하다 보면 계속 보인다는 거예요.”
같은 역할을 맡은 윤나무에게는 고마움이 크다. 다소 늦게 합류해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이 힘에 부칠 때도 윤나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는 윤나무에 대해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때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가장 좋아하는 동생’이라고 덧붙였다. 김대현은 “나무에게 정말 많이 배웠어요. 같은 작품을 할 때 역할을 이해시켜준 것도 늘 나무였고요. 나무는 소극장에서 오래 연기를 해서 그런지 정말 잘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나무의 ‘기수’가 가진 장점을 자신의 ‘기수’로 소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캐릭터를 잡아가는 윤나무를 보면서 김대현의 스트레스는 점점 가중됐다. “나무가 기수로서 보여주는 허세 같은 게 있어요. 무대 위에 딱 버티고 서 있는 모습 같은 거요. 그런데 전 아무리 해도 나무처럼 안 되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매번 민준호 연출님이 ‘네 것 대로 가야한다’고 가르쳐 주시는데 늘 잊어버려요. 연습 마지막에서야 제 것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무대 위에서 제 마음이 가는대로 하고 있어요. 나래를 펼치고 있죠.(웃음)”
이번 작품에는 배우들이 서로 상의하며 만든 장면들도 많다. 특히, 윤나무와 김대현, 유일은 많은 대화를 통해 캐릭터의 빈틈을 메워나갔다. 김대현은 “서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장면도 많이 바뀌었고요”라고 설명했다. 특히, 기수가 프랜의 탭을 보게 되는 장면은 기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아이디어가 컸다.
“처음에는 탭 소리가 총 소리처럼 들리는 걸로 이야기가 됐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상황, 총 소리에 대한 민감함 등을 반영한 거죠. 나무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수도 군인으로 살아왔는데 총 소리 때문에 노이로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이런 생각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처음 대본에는 프랜이 탭을 하면서 ‘무섭냐?’라고 묻는 거였다면, 지금은 프랜이 ‘놀랐어? 신기해?’라고 해요.”
배우들의 의견이 반영된 데는 ‘창작 초연’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지만 의견을 잘 수렴해준 김태형 연출의 몫도 컸다. 김대현은 뮤지컬 ‘로기수’의 김태형 연출에 대해 “정말 좋아하는 연출님이에요. 상대방을 잘 배려해 주세요. ‘이 대사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한 번 해봐’라고 해주시거나 ‘이런 건 어때’라고 이해를 시켜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와 올해 여러 작품을 함께해온 민준호 연출에 대해서도 말을 덧붙였다.
“민준호 연출님도 제가 정말 좋아해요. ‘이렇게 한 번 해볼래? 그게 맞는 것 같으면 그렇게 해’라고 해주세요. 이야기의 맥락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잘 받아주시고요. 그래서 뮤지컬 ‘로기수’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은 나무와 유일이, 저 모두 다 색이 달라요.”
정말 신나게 추는 탭댄스
뮤지컬 ‘로기수’ 속 김대현은 유달리 몰입한 표정이 자주 보인다. 탭을 출 때는 몰입의 정점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두 팔로 균형을 잡은 채 발을 빠르게 ‘탁탁’하고 놀리는 데 집중한다. 김대현은 “춤 추는 걸 정말 좋아해서 그렇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 얼굴에서 ‘난 딴스가 좋아요!’라고 외치던 기수의 모습이 얼핏 스쳤다.
“처음에는 탭을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만 했어요. 지금은 익숙해지니까 조금씩 즐기게 됐어요. 무대 올라가기 전에 탭을 다섯 번 이상 연습하고 들어가요. 그래도 가끔 틀리긴 해요.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면 정말 마음대로 춰요. 정말 신나게요.(웃음)”
제대로 된 탭을 위해 김대현은 난생 처음 연습실을 대여하기까지 했다. 공연 연습이 끝나면 따로 연습실을 빌려 탭 연습을 한 것이다. “평생 살면서 연습 끝나고 연습실 빌려서 연습한건 처음”이라는 그는 “프랜 역의
대웅이 형이 그렇게 하셨어요. 더블캐스팅이 임춘길 형님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을 거예요.(임춘길은 이번 공연의 탭 안무를 직접 짰을 정도로 실력자다) ‘대웅이 형도 저렇게 하시는 데 나도 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죠.”
뮤지컬 ‘로기수’는 유독 와 닿는 대사나 가사들이 많다. 중독성이 강한 킬링넘버는 아쉽지만, 곰곰이 되짚게 하는 가사들이 오랜 시간 여운을 준다. 김대현은 가장 좋아하는 곡에 대해 ‘각오 높게 살라’를 꼽았다.
“‘당부’라는 노래도 좋아해요. ‘꿈을 버리면 너도 없다’는 말이 어쩌면 제 얘기일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각오 높게 살라’를 정말 좋아해요. 그 노래를 부를 때 정말 슬퍼요. 웃으면서 부르려고 많이 노력을 하는데, 슬퍼요.”
‘각오 높게 살라’는 기수와 기진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다. 형 로기진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행복한 얼굴로 “저는 성(형)을 정말 사랑하는 동생이에요”라고 웃어보였다.
“저는 극중에서도 ‘성이 너무 좋아요’라고 아예 대사를 해요. 지금 기진 역을 하는 형들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형들이고요. 모두 저에겐 형 같은 형들이에요. 제가 공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형이 저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지만, 극중에서는 형이 저 때문에 그렇게 변한 걸 몰라요, 바보같이. 뒤에서는 형 걱정을 엄청 하면서 형이 앞에 있을 때는 애써 아닌 척 해요. 마음으로는 정말 좋아하고 걱정하는데 도요.”
여기까지 올지 몰랐다
뮤지컬 ‘로기수’는 ‘꿈’에 대한 메시지가 강렬하다. ‘당부’라는 곡에는 ‘꿈이 없으면 너도 없다’라는 직접적인 가사가 등장하고, 기진은 ‘네 꿈을 찾으라’고 동생에게 부탁한다. 그렇다면 무대 위에서 기수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배우 김대현의 ‘꿈’은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질문을 던지자 그는 “꿈이요?”라고 되물은 뒤 잠시 생각에 빠졌다.
“사실 저는 제가 여기까지 올 줄 몰랐어요. 원래 꿈은 개그맨이었어요. 근데 어떻게 하다보니 춤을 추게 되고, 노래를 하게 된 거예요. 응시했던 연극영화과도 다 떨어졌었어요. 예비 5번으로 붙은 학교에서 춤을 추게 되고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를 하게 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소극장 작품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까하고요. 이만큼 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해요. 물론 배우니까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꿈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고생 많이 한 어머니를 조금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집 한 채 딱 사드리고 저 스스로 편하게 일을 하고 싶어요. 외국 나가서 많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지금은 여기서도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으니까 여기서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해요. 나중에 나이 들면 외국에서 공연해보고 싶어요.”
뮤지컬 ‘로기수’는 기수가 새로운 기로에 놓이는 지점에서 끝이 난다. 김대현은 뮤지컬 ‘로기수’의 엔딩에 대해 “무조건 해피엔딩”이었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마 기수가 할 줄 아는 건 탭댄스 밖에 없을 거예요. 마지막에 형이 징 박힌 탭 슈즈를 주잖아요. 그 장면을 생각하니까 좀….(그는 이 부분에서 잠시 눈물을 참았다) 형이 네 꿈을 찾으라고 했으니까 최고의 탭댄서가 됐을 것 같아요. 복심이를 계속 만났을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무조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어요. 복심이는 노래하고, 저는 탭 댄스를 하고요. 화룡이도 같이 춤추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화룡이와 개순이는 결혼했을 것 같아요. 무조건 해피엔딩!(웃음). 이 작품만은 그랬으면 좋겠어요.”
늘 무대에서 배운다
김대현은 늘 무대 위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작품을 하나할 때 마다 깨닫고 느끼게 되는 바가 있어서다. 그는 전작인 뮤지컬 ‘바람직한 청소년’에 대해서도 “배운 것이 많다”고 했다.
“많은 걸 느꼈어요. 어른들의 잣대로 만들어진 아이들의 불행함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들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었어요. 동성애 소재의 공연을 할 뻔 했었는데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고요. 뮤지컬 ‘바람직한 청소년’은 민준호 연출님이 하신대서.(웃음) 원래는 싸움 잘하는 ‘현신’ 역이었어요. 그런데 민준호 연출님이 연극 ‘뜨거운 여름’의 ‘진안’ 역과 비슷하니 다른 캐릭터에서 도전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도전하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됐어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드는 거구나 하고요. 아이들은 헷갈릴 수 있잖아요. 내가 이 친구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 남자를 좋아하는 걸까? 하고요. 그렇게 아이들이 고민할 때, 어른들이 ‘넌 게이야’라고 단정 짓듯이 말해버리니까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작품도 정말 많이 배웠어요.”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가끔 위험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연극 ‘뜨거운 여름’의 ‘진안’ 역을 하다가는 길거리에서 싸울 뻔한 적도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젊은 청년들이 어깨를 먼저 부딪혀 놓고는 째려본 것이다.
“정말 멱살 잡고 싸울 뻔 했어요. 욕을 잘 안하는데 그 때 욕을 했어요. 나중에는 사과하고 잘 마무리했습니다.(웃음) 부딪히는 순간에 그대로 ‘진안’이가 나오는 바람에…. 그 작품에서는 욕을 많이 배웠어요. 저는 어렸을 때도 싸우거나 욕을 하지 않았거든요. 주먹으로 사람을 때려 본 적도 없고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싸우지 말라’고 하신 이후로 단 한 번도 싸운 적 없어요. 정의감에 불타서 싸운 적은 있어요. 거~의 정당한 사유로.(웃음)”
뮤지컬 ‘로기수’에 너무 빠져들어 고생한 적은 없냐고 묻자 대뜸 발을 구르더니 “너무 바보 같다고요!”라고 토로했다. “음악감독님이 ‘대현이 너 노래 부르는 데 왜 이렇게 바보같냐’고 하셨어요. 말투도 점점 인민군 같아진다면서요. 리딩공연은 멋있는 역할인데 하나도 안 멋있대요. 우선은… 열심히 해봐야죠. 제가 멋있는 역할을 많이 안 해봐서.(웃음)”
마지막으로 그에게 2015년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대현은 “지금 거의 다 이뤘다”며 이후의 계획에 대해 솔직한 답변을 전했다.
“우선은 민준호 연출님과 작품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외부 작품도 있고,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작품도 있을 것 같고요. 아, 그리고 저 6월에 2주간 놀러갈 거예요. 자전거 여행이요. 4년 만에 이렇게 쉬는 건 처음이거든요.(웃음)”
김대현은 뮤지컬 ‘로기수’를 끝낸 후, 오랜만에 찾아온 달콤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이후엔 연극 ‘뜨거운 무대’의 연습에 들어간다. 그가 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잠깐의 휴식이 마냥 아쉽지만은 않다. 태양보다 더 뜨거운 에너지로 다시 무대로 돌아올 그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