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인생 마지막 도전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거스 히딩크 네덜란드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사진 = KNVB) |
라트비아전 대승으로 반전의 기미를 보였던 네덜란드가 터키를 상대로 한 유로 2016 예선 A조 5차전에서 1-1 무승부에 그치며 다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1일 새벽(한국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A매치 평가전에서 2-0 승리를 거뒀지만 평가전에 불과하다.
1위 체코에 승점 6점, 2위 아이슬란드에 승점 5점 뒤진 현 상황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은 물론 ‘수장’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은 루이스 반 할 감독이 2014 브라질월드컵 예선과 본선을 통해 구축해놓은 경쟁력 있는 라인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벼랑 끝에 몰린 상태다.
사실 네덜란드의 부진을 오롯이 히딩크 감독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무리한 면이 있다. 과거에는 베스트11은 물론 벤치까지 빅클럽 주전 멤버들로 채워졌을 정도로 초호화 군단이었지만, 지금 네덜란드는 로빈 반 페르시와 아르옌 로벤, 베슬레이 스네이더 정도를 제외하면 빅네임이라고 할 만한 선수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 브라질월드컵 3위라는 성적은 반 할 감독의 ‘마법’과 대회 내내 최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한 로벤의 활약, 그리고 약간의 행운이 더해져 생긴 깜짝 이벤트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럼에도 히딩크 감독의 책임을 지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현재 네덜란드의 선수단이 체코, 아이슬란드, 터키, 라트비아, 카자흐스탄과의 경쟁을 이겨내지 못할 수준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체코는 유럽 굴지의 강호로 꼽혔던 2000년대 중반의 체코가 아니고, 아이슬란드는 스웨덴 출신의 명장 라스 라거백 감독의 지휘 아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지만 선수단 자체가 좋은 팀은 아니다.
터키 역시 유로2008 4강 진출을 마지막으로 지역예선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는 팀이다. 불과 2년 전 압도적인 승점차로 2014 브라질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D조에서 1위를 차지했던 네덜란드임을 감안하면, 체코, 아이슬란드에 뒤져 조 3위를 기록 중인 지금의 성적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둘째, 명확한 철학과 계획이 보이지 않는 전술 운용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반 할 감독은 에레디비지에 출신의 젊은 선수들을 대거 등용해 많이 뛰면서 상대를 압박하고 신속하게 공격으로 전환해 로벤과 반 페르시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축구를 펼쳤다. 뚜렷한 철학과 계획 아래 선수 선발이 이뤄지고 전술이 구축됐던 셈이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 체제의 네덜란드에서는 확실한 컨셉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터키전에서 네덜란드는 64-36으로 볼 점유율에서 크게 앞섰다. 기본적으로 볼 점유율이 높으면 수비형 미드필더나 풀백이 공격에 가담하기 쉬워져 상대 진영에서의 패스 코스가 늘어나므로, 조합 플레이를 펼치기가 용이해진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중용하는 선수들은 좁은 공간에서의 정교하고 세밀한 부분 전술 수행보다는 넓은 공간에서의 기회 창출에 장점이 있는 선수들이다. 이러한 전술과 선수 기용 사이의 괴리는 팀컬러를 흐리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네덜란드가 남은 5경기에서 승점 5점차를 뒤집기 위해서는 팀 구성에 과감히 메스를 댈 필요가 있다. 요르디 클라시, 다비 클라센처럼 기술적인 미드필더를 기용해 완전히 변화를 주거나, 아예 반 할 감독이 구축해놓은 팀컬러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발전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지금처럼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선수 기용과 전술 운용으로는 체코, 아이슬란드와의 승점차를 줄이기 어렵고, 설사 유로2016 본선에 오른다 해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이미 예선의 절반을 소화한 상황에서 팀에 급격한 변화를 주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절반이 지났는데도 팀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면, 과감한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일 수도 있다. 축구 인생 마지막 도전에 나선 히딩크 감독이 특유의 정면 돌파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