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월 실업률 발표 이후 금리인상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신흥국을 중심으로 주가와 통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벌써부터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인상을 너무 빨리 추진하지 않았느냐는 비판과 함께, 미국 증시에 낀 거품이 본격적으로 붕괴되는 것이 아니냐와 신흥국에서 제2의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증시에서 거품 논쟁이 일어난지는 오래됐다. 첫 단추는 2012년 8월에 있었던 ‘주식숭배(cult of equity) 종료 논쟁’이다. 당시 빌 그로스는 채권을, 워런 버핏은 주식을 살 것을 권했다. 그 후 다우존스지수가 크게 올라 그로스 자신도 패배를 인정할 만큼 버핏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한동안 잠잠하던 거품 논쟁이 다시 불이 붙은 것은 그로부터 꼭 1년 만인 2013년 8월이다. 이색적인 것은 비관론자 간에 벌어졌다는 점이다. 마크 파버는 그해 남은 기간 안에 주가가 20% 폭락을 주장한데 반해, 누니엘 루비니 교수는 앞으로 2년 동안 재테크 수단으로 주식이 가장 유망할 것으로 내다봤었다.
곧이어 3차 논쟁이 벌어졌다. 케이스-실러지수를 만든 로버트 실러와 우리에게 「투자의 정석」,「성장의 함정」의 저자로 알려진 제러미 시겔 간의 논쟁이다. 실러는 2013년 9월 당시 PER(주가수익비율)가 CAPE 지수(물가를 감안한 10년간 PER 평균치)보다 높은 점을 근거로 거품이 끼었다는 주장에 시겔은 통계상의 오류를 들어 정면으로 반박했다. 실러 교수는 올해 들어서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증시에 낀 거품이 붕괴되려면 특정 계기가 있어야 한다. 미국의 2월 실업률 발표 이후 급부상하고 있는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면 자금이탈에 시달리는 신흥국 위기로 미국이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제2의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 가능성까지 나온다.
더 우려되는 것은 미국 금리인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신흥국들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급격한 자금이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앞으로 신흥국 금융시장에서는 외국자금이 추가로 유입되는 것보다 유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급격한 자금이탈은 외환?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며, 외환?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제의 침체는 또 다른 자금이탈을 유발하는 이른바 나선형 악순환 위기를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주요국의 경험적 사례를 보면 급격한 자금이탈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외환위기, 금융위기 또는 국가채무위기 등 다양한 형태의 위기로 발전된다.
국별로 차이는 있으나 급격한 자금이탈은 특정국가의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에는 내부요인보다 외부요인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기실현적 기대(self-fulfilling expectation)로 설명하는 시각이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가 형성될 경우 자본흐름이 역전되면서 급격한 자금이탈과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인접국가로 전염된다고 봤다. 태생적 한계(original sin)를 갖고 있는 신흥국과 개도국의 금융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이 이론의 시각에 따라 파악하려는 경향들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 부각 이후 고개를 들고 있는 ‘제2의 신흥국 위기설’에서 따져봐야 할 것은 지금은 1990년대 후반 상황과 다르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신흥국 공통적인 내부문제에서 비롯됐다. 특정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는 곧바로 인접국으로 확산되는 ‘전염 혹은 나비 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흥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외환보유고 등 위기지표를 토대로 앞으로 출구전략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경우 신흥국별 외환위기 가능성을 점검하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가장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은 국가(high crisis countries)로는 외환보유고에 비해 경상적자와 재정적자가 심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르헨티나, 터키 등으로 나타난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지금 당장은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으나 신흥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경우 쉽게 전염될 수 있는 국가(middle crisis countries)’로는 외환보유고는 적정수준 이상 쌓아 놓고 있지만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악화되고 있는 러시아, 체코, 태국, 멕시코 등이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오히려 출구전략이 추진될 경우 기회요인이 더 많을 수 있는 국가(low crisis countries)로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건전하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히 쌓아 놓고 있는 한국, 중국 등이다. 1997년과 달리 이번에는 같은 신흥국이라 하더라도 금리인상에 따른 영향이 다르다는 점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고위험 위기국으로 분류되는 신흥국들이 자금이탈 방지를 위해 성급하게 금리를 올리고 있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성급하게 금리를 올리면 ‘금리인상→실물경기 침체→추가 자금이탈→외환위기 발생’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악순환 이론(spiral vicious circle theory)’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신흥국들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고 글로벌화가 더 진전돼 초연결 사회(high connection society)다. 이런 여건에서 신흥국들이 외환위기에 빠지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역풍(reverse spill over effect)’을 맞아 선진국 경기도 다시 침체국면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일한 해결책은 금리인상에 대한 Fed의 입장이다. 금리인상도 양적완화 종료와 함께 또 다른 각도의 금융시장과 경기안정책이다. 앞으로 Fed가 금리인상 추진 이후 나타나고 있는 선진국 주가와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을 거품과 고평가가 해소되는 아름다운 조정으로 판단한다면 크게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모든 위기는 발생하기 전에 미리 그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면 정책당국을 비롯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사전에 준비가 가능하고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그에 따른 경제사회적 비용을 상당부문 줄일 수 있다. 이런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신호등 체제를 활용한 ‘조기경보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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