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가 세계 부채 보고서가 발표됐다. 한 마디로 ‘입이 딸 버러질 정도’로 엄청난 액수다. 7년 전 빚이 너무 많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홍역을 치렀지만 빚이 줄기보다 많아지더라도 너무 많이 늘었다. 조만간 금융위기가 다시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2007년 이후 세계 빚(공공 부채+민간 부채)은 57조 달러가 급증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6경 3천조원에 해당한다. 작년 2분기말 기준으로 세계 빚은 199조 달러로, 금융위기 이후 빚이 늘어나는 속도를 감안하면 올해 2월에는 210조 달러(23경 1천조원)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1인당 3300만원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빚이 빠르게 늘어난 원인을 공공과 민간으로 나눠 살펴보면 공공 부문은 ‘재정적자 화폐화(fiscal debt monetization)`가 주범이다. 당면한 금융위기 극복과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일단 중앙은행에 매각하고 나중에 되사주는 방식(buy-back)으로 발행한 국채가 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국이 심했다.
민간 부문의 빚이 늘어난 것은 양적완화로 돈이 많이 풀린 데다 금리도 제로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낮춰났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미래가 불확실해 투자와 소비가 좀처럼 늘지 않자 조급해진 정책당국(은행도 가세)이 기업과 가계에게 빚(대출)을 권장하는 분위기도 한 몫 했다. 현재 돈 꿔준 사람보다 꿔간 사람이 큰 소리 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도 이 요인이 크다.
빚의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선진국의 빚(공공 부채)이 주로 늘어났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신흥국의 빚(가계 부채)이 급증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띤다. 세계 빚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에는 22%에 불과했으나 올해 2월 들어서는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불과 7년 사이 2배 이상 높아졌다.
앞으로 빚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해 빚 상환능력이 떨어진데다, 위기가 계속되고 있어 빚을 내야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 이후 미국의 금리인상을 계기로 국제 금리가 본격적인 상승국면에 진입할 경우 빚이 또 다른 빚을 부르는 ‘나선형 악순환 고리(vicious spiral cycle)’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애프터 크라이시스 성격이 짙은 세계 빚이 과도하게 많아지면 가장 우려되는 것은 ‘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통화 공급→금리 하락→총수요 증가→경기 부양)’가 작동되지 않는 점이다. 이때 금융과 실물 간 따로 노는 `이분법 경제(dichotomy)`에 처해 돈을 푼다 하더라도 실물 경제에 들어가지 않고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현상이 발생한다.
재정정책은 시차가 길어진다. 시차는 정책입안에서 국회 통과하기까지 ‘내부(행정) 시차’, 정책확정 후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외부(집행) 시차’로 구분된다. 표심에 가장 민감한 빚이 많아지면 내부 시차가 길어지는 폐단이 있다. 확정된 재정정책도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공공 지출 증가가 민간 수요를 위축시키는 현상)`로 경기부양 효과가 반감된다.
특히 가계 빚이 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만큼 물가가 낮은 여건에서는 실질 자산소득과 실질 부채부담이 동시에 늘어나 계층별 빈부격차가 더 확대된다. 상대소득가설에 따르면 돈이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보다 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경기까지 침체된다.
자국통화 평가절하 등의 다른 목적이 있긴 하지만 올해 들어 빚이 많고 물가가 낮은 국가일수록 금리를 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설령 빚의 절대 규모가 늘어나지 않더라도 저물가에 따른 실질부채부담이 증가하는 것을 금리인하 등을 통해 보완해 줘야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경기가 둔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은 가계 빚이 유독 많은 국가다. 이번 보고서에서 캐나다, 스웨덴, 호주 등과 함께 7대 가계부채 취약국으로 분류됐다. 특히 빚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원리금상환부담율은 7대 취약국 중에서도 가장 높다. 소비자물가상승율은 한은의 물가목표치(2.5%∼3.5%)의 하단 밑으로 떨어진지 2년이 넘었다. 올해 1월에는 0%대로 떨어졌다. 넓은 의미로 디플레이션인 ‘로플레이션’ 단계다.
올 들어 대내외 금융환경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작년 6월 ECB는 `마이너스 예금 금리제`를 발표했다. 은행에 예금해도 이자를 받기보다 보관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파격적인 이 제도가 ECB가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은 예금하지 말고 그대로 소비나 투자하면 경기를 살릴 수 있다는 의도에서다. 그 이후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마이너스 예금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우리도 작년 8월 이후 두 차례 정책금리를 인하했다. 경기부양 목적을 달성하려면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 비용금리인 대출금리가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 비용금리인 예금금리가 더 빨리 내려 1년 만기 예금금리가 1%대까지 진입했다. 올 상반기에 한 차례 더 정책금리가 내린다면 가처분 예금금리는 0%대, 실질 예금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예금금리가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진다면 국민과 기업 입장에서는 은행에 저축할 유인이 없어지게 된다. 나라 안팎으로 ‘저축 무용론’이 거세게 부는 배경이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도 자본 축적 여부와 관계없이 돈이 남아돌면 ‘절약의 역설(saving`s paradox)` 시대에 접어들다. 이때 저축하면 오히려 경기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저축 무용론‘이 더 힘을 얻고 있다.
금융사는 은행에서 이탈되는 돈, 즉 ‘뉴 머니’를 잡아야 한다. 개인도 이제는 저축이 아니라 투자해야 자신의 재산을 늘릴 수 있다. 투자란 위험을 감수해야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 지고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에서는 위험을 감수한다 하더라도 종전만큼 수익이 나지 않는다. 금융상품 수익률의 하향 평준화 현상이다.
앞으로 ‘정(正)의 재테크’에서 ‘부(負)의 재테크’가 뜰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자는 남아도는 돈을 굴려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종전의 재테크 개념이다. 후자는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데 들어가는 수수료, 세금 등을 줄여 손에 들어오는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재테크를 말한다. 정부가 국민 편에서 연말정산을 잘 해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금과 보험 등이 대표적인 `부의 재테크` 금융상품이다. 수익도 중요한 목표이긴 하지만 50년 이상 길어진 은퇴 이후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데 주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기대 수익이 예상된다면 부채를 잘 활용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그 반대의 경우는 부채부터 우선적으로 갚아야 한다.
남아도는 돈을 투자해 수익을 내고 각종 비용을 줄이는 것이 바로 `자산관리(asset management)’다. 글로벌 선도 투자은행들은 자산관리에 주력한지 오래됐다. 국내에서도 자산관리에 일찍부터 눈을 떠 이제는 탄탄한 수익기반을 갖고 가는 금융전문 그룹이 있으나 대부분 국내 금융사들은 올해부터 부쩍 자산관리를 표방하고 있다.
자산관리를 표방한다 하더라도 곧바로 금융사의 수익과 고객의 자산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지금은 ‘뉴 노멀’ 시대라 부른다. 종전의 이론과 관행으로 설명되지 않는 예기치 못한 상황, 즉 ‘노이즈(noise)`가 수시로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때는 오랫동안 시장경험이 축적돼 있어야 이 현상을 제대로 파악해 고객을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할 수 있다.
설령 스카우트 등을 통해 단기간에 자산관리 인력을 갖춰다 하더라도 글로벌 경험이 없다면 금융사나 고객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수익을 낼 수 없다. 통계기법상 요인분석을 통해 주가, 금리, 환율, 경우에 따라서는 부동산 가격 등 자산관리 수익변수의 결정력을 따져보면 한국의 경우 글로벌 요인이 80%, 우리 요인이 20% 정도 좌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와 한국 경제가 동조화 현상을 보일 때는 우리 경제만 생각해서 고객의 자산을 관리해 주더라도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탈동조화 현상을 보일 때는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 경제만 감안해 고객의 자산을 관리해 주면 커다란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S`자형 경제발전론으로 볼 때 우리 경제는 성장속도가 둔화되는 단계에 진입해 성장률이 4% 이상 올라가기는 힘든 여건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시장은 한 눈에 꿰뚫을 수 있는 `직관력(insight)‘과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글로벌 재테크 수단을 적기에 우리 국민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망(network)`을 구축해야 제대로 된 자산관리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글로벌 자산관리가 가능한 금융사만이 고객으로부터 환영받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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