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42) 씨는 설을 앞두고 마음이 무겁다.
회사 실적이 나빠지면서 작년 연말 보너스도 받지 못한데다 매년 초 받아왔던 세금 연말정산 환급액도 올해에는 받지 못하고 오히려 더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올해에는 설 상여금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이번 설에는 친척들 선물은커녕, 부모님 용돈과 세뱃돈이나 제대로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가운데 새해 들어 담뱃값 상승, 연말정산 제도 개편에 따른 세금 부담 등으로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가 더욱 싸늘해지면서 설을 앞두고도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1월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9월(107)부터 3개월 연속 떨어지던 소비자심리지수(C
CSI)가 지난달 102로 1포인트 상승했지만, 세월호 참사 여파로 심리가 위축된 작년 5월(104)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3개월째 이어진 악화 추세가 멈추긴 했지만 3개월 연속 하락에 따른 반등세가 작용한 것으로 소비자들의 심리 상태가 여전히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싸늘한 소비 심리는 백화점과 마트 매출에서도 드러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백화점 3사의 매출은 작년 같은 달과 비교해 늘어난 점포를 제외하면 3-5% 줄었다.
작년에는 설이 1월31일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설 선물세트 매출 비중이 큰 식품군을 제외하더라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거나 성장률이 1% 미만으로 제자리걸음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의 설 선물 구매에서도 경기 불황을 반영한 알뜰·실속 경향이 두드러진다.
홈플러스가 작년 12월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실시한 설 선물세트 사전예약 실적을 보면 1만~3만 원대 상품 판매가 작년 설보다 32.4%, 3만~5만 원대가 46.0% 각각 늘어나는 등 저렴한 가격대의 선물세트 판매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홈플러스는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지난 5일부터 시작된 선물세트 본 판매에서는 총 4천여 종 중 절반가량인 1천800여 종을 3만 원 이하 상품으로 구성했다.
롯데마트의 예약판매에서는 기업들이 주로 찾는 조미료·인스턴트 식품 세트의 평균 구매단가가 3만 2천466원으로 8% 하락하고 매출 구성비도 8%가량 낮아진 반면, 평균가격이 1만 7천815원인 생활용품 세트의 매출은 늘면서 매출 구성비가 2.3% 상승했다.
불황으로 기업들의 씀씀이가 줄면서 좀 더 저렴한 생활용품 세트로 수요가 이동한 것이라고 롯데마트 측은 분석했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명절 비용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이 지난달 회원 1천237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들의 설 선물 지출 예정 금액이 17만 원으로 작년보다 4만 원 줄었다. 차례상 준비에 쓰려는 돈도 평균 23만 원으로 작년보다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상 준비를 앞둔 주부들도 걱정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설 명절을 3주 앞둔 지난달 29일 4인 가족 기준 26개 품목의 차례상 구입비용을 조사한 결과, 전통시장은 20만 9천 원, 대형유통업체는 30만 9천 원으로 작년(전통시장 20만 6천 원, 대형유통업체 29만 5천 원)에 비해 소폭 올랐다.
과일류는 지난해 풍작으로 공급이 늘면서 가격이 내려간 반면 도축이 감소한 쇠고기 가격과 한파와 폭설로 생육상황이 좋지 않은 시금치·도라지 등 나물류 가격이 올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