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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칼럼] 바람몰이 문화… 영화 ‘인터스텔라’의 이상한 한국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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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인터스텔라’(사진 = ‘인터스텔라’ 스틸컷)


‘인터스텔라’가 마침내 천만 영화 반열에 올랐다. 북미지역을 제외한 세계흥행에서 한국은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는데, 인구대비로 따지면 한국이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천만 영화는 범국민적인 관람열풍이 나타났을 때에만 가능한 흥행이다. 본고장인 북미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인데, ‘인터스텔라’는 왜 한국에서 뜨겁게 터졌던 걸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겐 ‘인셉션’ 이래로 거장이라는 분류표가 붙었다. 그리하여 ‘인터스텔라’는 거장이 만든 명품 영화가 됐다. 한국시장은 명품에 대단히 약하다. 해외 명품브랜드의 ‘호갱’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비싼 돈을 주고 명품을 산다. ‘인터스텔라’도 명품이기 때문에 ‘닥치고’ 봐야 하는 작품이 됐다.

여기에 정답주의가 가세했다. 입시교육의 영향으로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져 모든 것을 정답과 오답으로 양분하는 현상이다. 문화현상엔 다양한 취향,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인은 하나의 정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리하여 정답으로 제기된 작품에 대해선 결사적으로 옹호하고 열성적으로 홍보에 나선다. 조금이라도 다른 소리가 나오면 집단공격을 가한다. ‘인터스텔라’는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명품이기 때문에 정답이 되었다.

정답/오답 이분법은 대중적 열풍이 나타날 때마다 언제나 반복되는 일이다. 한때 오답처럼 여겨졌던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 수상 직후 정답으로 인정 되면서, 한동안 그에 대한 찬양 이외의 지적이 집단적 공격 대상이 되었다. ‘명량’ 직후에도 그런 현상이 있었고, 최근엔 ‘국제시장’이 정답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정답주의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숙을 가로막는 큰 장애로 작용한다.

미국에서 같으면 ‘인터스텔라’가 어려우니까 지겹다라고 가볍게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선 ‘명품, 정답’이 되었기 때문에 어려울수록 오히려 더 정신 바싹 차리고 이해해줘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래야만 수준 높은 지성인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인터스텔라’를 분석하고, 이에 대해 토론하고, 장면장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스스로의 지적 만족감을 높이는 작업이 되었다.

여기에 바람몰이 문화도 가세했다. 뭔가가 뜬다 싶으면 다 같이 가서 그 대열에 동참해야 하는 집단주의 문화 말이다. 패딩이 뜨면 다 같이 패딩을 입어야 하는 그런 문화, 집단에 끼지 못하면 행여 낙오될까 불안해하는 대중심리. ‘인터스텔라’의 범국민적 관람에도 그런 분위기가 작용했는데, 이런 바람몰이 문화는 이 작은 나라에서 천만 흥행이 되풀이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스텔라’는 초기의 열띤 입소문으로 인해 바람몰이의 깃발이 되었다.

‘인터스텔라’가 명품, 정답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네티즌들로 인해 방관자들마저 ‘도대체 어떤 영화냐’며 극장에 가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거기에 교육열도 가세했다. 과학적 지식이 제기되기 때문에 중년 관객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갈 명분이 됐던 것이다.

거기에 헐리우드 스펙터클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한국관객은 헐리우드 SF 스펙터클에 약하다. 아기자기한 한국 영화를 통해선 그런 욕구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거대하고 환상적인 헐리우드 SF 스펙터클을 봐줘야 하는데 이번엔 ‘인터스텔라’가 당첨됐다.

거기에 부성애 가족스토리에 열광하는 대중심리도 가세했다. 아버지 현상은 최근 가장 두드려지게 나타나는 문화현상 중의 하나다.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국제시장’ 등이 모두 아버지를 내세운다. ‘인터스텔라’에는 아버지 중에서도 인기가 특히 높은 딸바보 아버지가 등장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작품 자체의 힘도 작용했다. 괜찮은 완성도와 재미를 지난 작품이지 결코 허술한 졸작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만 흥행이라는 범국민적 열기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천만 사태는 단지 작품 자체의 완성도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대중심리를 건드려야만 발생하는 일이다. ‘인터스텔라’는 앞에서 지적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한국시장에서 천만 관객이라는 대박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시장의 바람몰이 경향으로 인해 나타나는 주기적 대박 때문에 헐리우드는 한국 시장을 경시할 수가 없게 됐다. 언제 또 대박이 터질지 모르는 요주의 시장이 된 것이다. 최근 잇따르는 헐리우드 스타의 방한이나, 제작진의 립서비스에는 이런 깜짝 대박 현상이 작용하고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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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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