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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칼럼] 영화 ‘국제시장’, 역사왜곡 논란 커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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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제시장’은 현대사 중 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총체적 진실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사진 =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영화 ‘국제시장’은 현대사를 관통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웃음과 눈물로 풀어낸 수작이다. 웃길 땐 확실히 웃기고 울릴 땐 확실히 울린다. 우리 현대사의 상처를 잘 다룰 경우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큰 흥행이 터지는 경향이 있는데, 영화 ‘국제시장’도 그런 전례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영화엔 비난도 잇따르고 있다. 우리 현대사의 흐름을 다뤘는데 그것이 역사의 진실을 왜곡내지는 은폐했다는 비난이다. 과연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일단 영화의 내용은 사실이다. 한 사람이 흥남부두에서의 철수와, 파독 광부와, 월남전과, 이산가족상봉 특별생방송을 모두 경험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그것은 영화적 설정이라고 봐줄 수 있는 부분이고, 어쨌든 그런 일들은 분명히 우리 현대사에 존재했다.

미군의 원조로 겨우 목숨줄을 잇고 미군을 쫓아다니며 ‘기브 미 초콜릿’을 하던 우리가, 윗세대의 피땀을 통해 어느덧 남을 원조할 정도로 풍요로워진 것도 사실이다.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가 벌어들인 외화는 우리 경제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화 없이는 경제성장의 시동을 전혀 걸 수 없었던 상황에서, 외화를 확보할 길이라곤 직접 몸으로 때우는 방법밖에 없었다. 물건이나 자원을 팔아 외화를 벌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윗세대는 독일로, 월남으로, 중동으로 직접 가 피땀 흘려 외화를 조달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외화가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렇게 산업을 성장시킨 결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 중동 건설붐이 한창일 때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을 치하하자 정 회장이 ‘각하 우리나라의 경영자들이 좋은 대학을 나왔습니까, 국제적인 경영능력이 있습니까? 이런 성과를 일궈낸 건 우리 노동자들의 공입니다’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어느 모로 보나 국제경쟁력이 전혀 없던 시절 우리 윗세대는 그야말로 몸뚱어리 하나 내던져서 외화를 벌어들이고 산업과 도시를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은 그런 윗세대의 헌신을 절절하게 전해준다는 미덕이 있다.

그런데 지금의 풍요를 만든 역사는 또 있다. 한국이 중화학공업을 일으킬 엄두도 못 내던 시절 외화를 벌어들인 건 섬유, 가발, 신발 등의 경공업이었다. 이 분야에선 여공들이 살인적인 환경에서 일을 했다. 근로기준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억압적 분위기에서 마침내 전태일이 분신하는 일까지 나타났다.

중화학공업이 발진하고 80년대에 자리를 잡은 후엔 87년 7.8.9 노동자 운동을 통해 임금이 상승했다. 즉, 살인적인 환경에서 피땀을 흘렸던 노동자들을 통해 산업이 성장하고, 전태일과 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인권과 실질소득이 상승한 결과 마침내 풍요로운 중산층의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했던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은 이런 현대사 중에서 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사실이되 총체적 진실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윗세대의 희생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건 분명한 진실이다. 그런데 그 희생은 파독 노동, 파월, 중동 건설, 여공의 눈물,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이뤄졌다. 영화는 이 중에서 뒷부분을 삭제하고 앞부분만을 낭만적으로 보여준다. 이 때문에 현대사를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

영화가 그려주지 않은 몫을 머릿속에서 스스로 구성하면서 볼 수 있는 관객에겐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고난의 민족사를 새삼 떠올리며 뜨거운 감동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그렇지 못한 관객들, 스스로 현대사를 구성할 능력이 없는 관객에겐 뜨거운 감동이 제한적인 역사인식으로 귀결될 위험도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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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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