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미생’의 여주인공 안영이 역의 강소라. 모든 걸 다 갖춘 완벽함 때문에 남자들에게 역차별을 받는다.(사진 = tvN) |
한 여사원이 사무실에서 쓰러진다. 며칠 동안 야근 등으로 무리를 한 탓이었는데 더구나 임신을 한 상태. 그러니 몸이 견뎌내질 못한 것이었다. 남자 사원들은 그 여사원에 대해 입방정을 떤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비난이었다.
그런데 집중적으로 문제가 된 점은 그 여사원이 셋째를 임신한 사실이었다. 셋째는 너무 했다는 것. 여사원이 출산으로 사무실을 비우면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생을 해야 한다며 남자 직원들이 연신 불만을 토로했다. 이는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이다.
또한 극중에서 오상식(이성민 분) 과장도 아이가 세 명이다. 아이가 세 명인 경우는 딸이 두 명이거나 아들이 두 명인데 딸이나 아들을 원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원하지 않은 임신 때문에 셋째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술에 취해 우리 애(장그래)만 혼났다며 동료 과장에게 마지못해 한 마디 한 오상식 과장은 치킨을 사들고, 세 아이들이 잠든 방의 문을 열며 들어간다. 이런 아빠를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맞이한다. 그는 아침 일찍 출근할 때도 아이들의 환호성에 둘러싸여 나간다.
오 과장이 어떤 연유로 아이를 세 명이나 갖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 때문에 힘든 직장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 때문인지 아이 육아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는 선지영 차장(신은정 분)을 대하며 오상식 과장은 책상 위에 있는 가족사진을 함께 견줘보고, 장그래(임시완 분)에게 선지영 차장의 딸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오게 한다.
최근 이와 관련한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정부은행 연구팀에 따르면 아이를 양육하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생산성이 높았다. 특히 아이가 둘 이상일 경우에는 훨씬 생산성이 높았다. 이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것으로 보여 화제가 됐다.
반면 아이를 양육하지 않는 여성은 생산성이 현저히 낮았다. 아이가 몇 명인가와 별개로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았다.
그러나 영유아기 자녀를 둔 남녀 직원은 15-17% 정도 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티어스 그라프 교수 등이 집필한 또 다른 보고서에서는 경제학자들을 통해 고숙련 노동자들의 자녀와 생산성 사이의 관련성을 검토하고 있는데 아이가 있는 엄마 경제학자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생산성이 높았다.
특히 둘 이상인 엄마 경제학자들이 하나뿐이거나 없는 이들보다 생산성이 높았다. 이는 남성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12살이거나 그 이하의 경우, 여성은 14.7%, 남성은 5%의 생산성 저하가 있었다. 싱글맘인 경우에는 30%의 감소가 있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있는 남녀직장인은 왜 생산성이 높은 것일까. 아이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지는 이유는 책임감, 소속감, 안정감 등이었다. 따라서 영유아기 때는 비록 생산성이 낮을지라도 그 기간을 잘 이겨내면, 개인 자신이나 조직에게 훨씬 도움이 된다. 아이를 책임져야 하고,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자녀 때문에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상황이 생산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 과장(이성민 분)은 아이들 때문에 힘든 직장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사진 = tvN) |
다만, 영유아기 때는 신경을 훨씬 아이에게 많이 써야하기 때문에 생산성은 저하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결혼과 출산 육아는 개인에게나 조직에 손해인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영화 ‘나의 독재자’를 보면, 아버지 김성근(설경구 분)은 아들(박해일 분)에게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가상 회담장의 김일성 역을 잘 해내려고 고군분투한다. 심지어 자신이 마치 김일성인 것처럼 현실착오를 일으킨다. 그것도 수십 년 동안 말이다. 만약 그에게 아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김일성 역에 충실하려고 그렇게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성근에게 두 명 이상의 자녀가 있었다면 정말 연극계의 슈퍼스타가 됐는지 모른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파인버그 의과대학의 연구팀에 따르면 요즘 아빠들은 연봉이 적을수록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였다. 자녀의 건강과 성장을 위해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을 더 했다. 왜 이렇게 노력을 하는 것일까. 경제적인 결핍을 자녀에 대한 보살핌으로 보완하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유한 아빠라면 덜 관심을 보일 수도 있다. 물질적으로 못해준 것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세 명이 좋을까, 두 명이 좋을까. 일단 생산성을 언급했지만 이는 고용 기업이나 실적을 평가하는 이들의 관점이다. 생산성에 관계없이 개인의 행복을 따져 볼 수 있어야 하겠다.
영국의 사회과학대학과 캐나다의 웨스턴온타리오대학 연구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18년차 부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둘째 아이를 낳은 때는 행복감이 증가하다가 셋째부터는 행복감이 저하됐다. 3명의 자녀보다는 2명의 자녀를 둔 부부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부터는 행복감보다는 부담감이 더 작용한다는 것인데 아이가 하나일 때보다 행복감이 낮은지는 알 수가 없었다.
드라마 ‘미생’으로 돌아가 보자. 오상식 과장은 아이가 셋이고, 모두 다 성장한 아이들은 아니다. 그래서 흔들리는 것일까. 하지만 앞선 연구결과에 따른다면 오상식 과장의 생산성은 최고가 될 것이다. 아이들이 주는 책임감, 심리적 안정감 그리고 소속감 때문이다.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경우보다 어쨌든 행복하고, 생산성도 높다. 그것은 개인이나 조직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다.
오상식 과장만이 아니라 다른 직원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세 명인 여직원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안영이(강소라 분)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안정감과 소속감, 책임감으로 생산성과 행복감을 올릴 수 있도록 기업의 후생복지는 유지돼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럴 때 남편의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그의 남편이 장그래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장그래는 정말 성공한 직장인이 되겠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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