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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리뷰] 뮤지컬 ‘레베카’…압도적 서스펜스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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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음산하다. 무대 위에는 소름 끼치는 유령도 없고, 연쇄살인마도 없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요 인물인 ‘레베카’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음습한 ‘맨덜리 저택’과 집착, 배신, 사랑 등의 것들이 뒤엉켜 덩어리진 공포를 창조한다. 잉태된 공포는 서슬퍼런 불측지연(不測之淵)으로 객석을 밀어 넣는다.

작품은 지난해 초연 무대에 올랐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원작 소설에 기반해,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뮤지컬화했다.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을 흥행시킨 ‘실베스터 르베이’와 ‘미하엘 쿤체’ 콤비의 작품이다.

뮤지컬 ‘레베카’의 기본 골자는 고딕 로맨스다. 지극히 평범한 한 여자가 막대한 부를 가진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작품은 이 진부한 구조를 ‘스릴러’를 통해 극복한다.

‘나’는 평범한 여자다. 가족 없이 ‘반 호퍼 부인’에게 의지해 지내던 그녀는 우연히 눈빛이 슬픈 남자 ‘막심’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나’는 ‘반 호퍼 부인’의 곁을 떠나 그와 함께 아름다운 저택 ‘맨덜리’로 오게 된다. 저택은 수상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죽은 ‘레베카’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집사 댄버스 부인은 시종일관 사나운 눈빛으로 그녀를 압박한다. 심지어 ‘바다에 뛰어들라’며 종용하기까지 한다. ‘막심’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나’를 사랑의 눈길로 대하다가도, 어느새 ‘레베카’의 그늘 안에서 휘청인다. ‘나’는 ‘막심’을 되찾기 위해,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는 ‘댄버스 부인’과의 전면전에 나선다.



극의 긴장감은 ‘무존재의 존재’로부터 시작된다.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레베카’의 존재감은 객석까지 범람한다. ‘댄버스 부인’은 신앙심과 같은 숭배로 ‘레베카’를 부르짖는다. ‘막심’은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긴장하고, 사람들은 ‘나’와 ‘레베카’를 하나부터 열까지 비교한다. ‘나’ 역시 ‘레베카’처럼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맨덜리 저택’ 전부가 ‘레베카’에 점령당한 식민지인 셈이다.

존재하지 않는 ‘레베카’와 실존하는 ‘나’의 갈등은 ‘맨덜리 저택’이라는 제한적 공간에서 부대끼며 날카로운 안개로 실체화된다. 장벽이 클수록 붕괴의 쾌감은 크다. 관객은 ‘나’가 마침내 ‘레베카’의 존재를 극복하고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라고 외칠 때 강력한 희열을 얻는다.



‘인물들의 비밀’은 관객 집중도를 높인 주요한 ‘열쇠’다. 뮤지컬 ‘레베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비밀이 있다. 다 ‘레베카’에 관련된 것들이다. 비밀이 없는 것은 ‘나’ 뿐이다. 온통 비밀로 쌓인 저택을 헤매야 하는 ‘나’의 상황은 관객의 동정표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인물 간의 미스터리한 관계도 관객을 집중력을 붙잡아 두는 일등공신이다. 작품은 인물 간의 관계를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레베카’와 ‘댄버스 부인’의 관계는 상황에 얼핏 드러날 뿐이다. “우리는 남자들을 함께 비웃었어”, “우리는 서로 무엇이든 털어 놓았어” 등의 대사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두 여인의 관계는 동성애로 읽히기도 하지만, 동경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해석의 여지를 줌으로서 관객이 참여할 틈을 열어 놓은 것이다. ‘막심’과 ‘레베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막심’은 불안의 끝에 몰릴 때까지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 ‘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막심’의 비밀은 관객이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들면서, 인물의 매력까지 배가시킨다. 다만, ‘레베카’와 ‘막심’의 전사(前史)에 대한 부재가 이야기의 허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뮤지컬은 배우 예술이다. 배우의 역량에 따라 작품의 결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서스펜스 장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뮤지컬 ‘레베카’의 배우들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레베카’의 이름을 주문처럼 울부짖는 ‘댄버스 부인’ 역의 신영숙은 자신의 ‘인생 캐릭터’를 만난 듯 펄떡인다. 매서운 눈매와 서늘한 말소리는 물론, 3옥타브를 넘나드는 절정의 가창력을 선보인다. 특히, ‘레베카’ 넘버에서는 소름끼치는 ‘하이노트’로 관객을 압도한다. 새로운 ‘나’를 보여준 오소연의 당찬 연기와, 매력적인 남자를 제대로 연기할 줄 아는 엄기준 ‘막심’의 조합도 매력적이다.



무대는 정승호 무대디자이너의 손길로 완성됐다. 영상을 활용한 무대 세트는 대형뮤지컬만의 압도적인 비주얼로 객석을 제압한다. 특히, ‘나’와 ‘댄버스 부인’의 이중창 ‘저 바다로 뛰어’는 뮤지컬 ‘레베카’의 백미다. 무대는 순식간에 해체되고, 두 배우를 실은 발코니는 자동으로 움직여 객석 앞까지 태질한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음산한 안개, 보랏빛 조명의 앙상블은 섬뜩한 매혹을 완성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재연 무대는 초연의 아쉬웠던 부분을 보강해 더욱 탄탄해졌다. 초연 당시, 작품은 ‘맨덜리 저택’이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대대적인 홍보에 비해 미흡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재연은 적극적인 보강으로 초연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냈다. 화염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계단과 바닥의 불길을 여러 갈래로 마련하고, 샤막에 비치는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뮤지컬 ‘레베카’는 11월 9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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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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