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여리하나 뚝심이 있고 조근조근하나 힘이 있다. 배우 한예리(30) 이야기다. 이렇게 힘든 작품을 어떻게 했을까 싶을 정도로 보호본능을 유발하지만 이상하게도 선택하는 작품들은 모두 거칠기만 하다. 영화 ‘해무’(심성보 감독, (주)해무 제작)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몸을 쓰는 액션은 없었지만 배 멀미 때문에 죽다 살아났다. 그래도 재미있었다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한예리는 ‘해무’에서 조선족 처녀 홍매를 연기했다. 홍매는 소식이 끊긴 오빠를 찾기 위해 밀항에 오른 인물. 홍매는 전진호 막내 선원 동식(박유천)에게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영화 촬영장에서는 오로지 홍매로 존재해야 했기에 한예리가 아닌 홍매로 생활했다는 그녀.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예리는 홍매가 됐다.
◆ “멀미약 때문에 헤롱헤롱, 촬영 어려워”
거의 배에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는 만큼 배 위에서의 촬영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멀미약을 달고 살았다. 헤롱헤롱한 상태로 연기를 했고 멀미약 때문에 겁을 먹기도 했다. 방법을 생각해냈다. 약을 먹지 않는 게 방법이었다. 나중에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며 그냥 촬영을 진행했다. 하루에 12시간씩 배를 타며 그렇게 버텼다.
“액체 멀미약인데 마시자마자 수면제처럼 10분 뒤에 졸음이 쏟아져요. 처음에는 ‘왜 이러지?’ 했는데 그게 멀미약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우선 반병을 먹고 힘들면 또 반을 마시라고 하더라고요. 약이 독했어요. 그런데 멀미약 때문에 촬영이 잘 안 돼요. 그래도 나중에는 적응을 좀 했죠. 그런데 육지에 나오니까 육지 병이 생긴 거예요. 배 타는 분들이 육지에서 적응이 안 된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비단 멀미약이 끝은 아니었다. 거의 유일한 여배우였기에 주위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홍매와 동식(박유천)이 막내여서 잘 챙겨줬다. ‘몸은 괜찮나, 아픈 데는 없냐’고 을 물으셨다. 걱정을 많이 하니까 오히려 좀 그랬다.” 한예리는 조금씩 자신의 몸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여배우가 쓰러지면 걱정은 배가 되니까. 그렇게 이를 악물었다.
“체력이 안 돼서 한 컷을, 한 테이크를 못 간다는 건 슬픈 거잖아요. 그래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보약도 먹고 운동도 했어요. 촬영을 하면서 삼시세끼 먹는 건 당연했고요. 육체적으로 식사를 못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간단히 도시락을 먹거나 주먹밥을 먹었죠. 멀미가 안 나려면 밥을 먹어서 속을 든든하게 해야 된다더라고요. 홍매, 밥심으로 버텼습니다.(웃음)”
◆ “조선족 말투, 애드리브 절대 못 해”
이것저것 생각하면 해야 될 것도 많았다. 홍매는 조선족이기에 말투도 달라야 했다. 다른 인물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하는데 반해 한예리는 조선족 말투를 연습했다. 사투리를 가르쳐 주는 사람을 옆에 놓고 부지런히 노력했다. “차분히 잘 가르쳐주셨다. 홍매도 그랬으면 해 말투를 가져왔다. 제스처도 많이 배웠다” 홍매는 그냥 탄생된 게 아니었다.
“혼자서는 절대 못해요. 따라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과 정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여성스러운 느낌을 많이 넣었어요. 음절의 강함도 배우고요. 말을 할 때 굴려서 많이 했어요. 홍매의 경우 느리게,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애드리브는 절대 못해요. 하나라도 틀리면 전체가 달라지니까. 홍매의 대사들은 지문 그대로였어요.”
한 작품을 해도 이렇게 힘든데 매번 힘든 걸 하는 이유를 물었다. “어렵게 하는 만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상하다. 고생을 해야 뭔가를 좀 한 것 같고 아무래도 열심히 노력을 한 만큼 후회가 없어진다. ‘난 이렇게 했으니까...’라며 위안을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답한다. 그래서 ‘해무’ 배우들과도 끈끈한 전우애를 느낀다. 이런 게 바로 사람 냄새다.
“배우들과 합숙을 하며 항상 모여서 같이 밥을 먹었어요. 김윤석 선배님이 밥을 같이 먹어야 가족이라고 하셨거든요. 항상 맛있는 걸 사주셔서 식대가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하하. 문성근 선배님의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 같은 현장에서 만난 게 정말 좋았어요. 오랜만에 오랫동안 현장에 있었던 거라 열정도 대단하셨고요. 가까이서 뵐 수 있어서 감사했죠. 오랫동안 찾아주는 배우, 그게 진정한 배우라는 마음도 들었답니다.(웃음)”(사진=NEW)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min@bluenews.co.kr
뉴스